조선 중년 표류기 - 표해록

김찬별
김찬별 · 부업작가
2024/03/02
최부는 1454년에 태어나서 조선 성종 시기에 벼슬을 하던 사람이다.

그는 1487년에 추쇄경차관이라는 벼슬을 받고 제주도에 부임했다. 추쇄경차관이라는 벼슬은 추노...를 하는 벼슬이다. 당대에도 도망간 노비나 부역기피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외진 곳으로 많이들 달아났었나보다.

하지만 부임한지 불과 세달이 지난 1월 30일에 부친의 부음을 듣게 된다. 곧 삼년 상을 치르기 위해 고향인 나주를 향해 일행 40명과 함께 배를 떠났다. 하지만 제주도를 얼마 벗어나지 못하고 폭풍을 만나, 바다위에서 십여 일을 표류하고 중국 절강성 임해현의 우두외양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지방 관원이 상을 당해 돌아가는데 배에 탄 사람이 40명이나 된다.  실제 최부의 일행은 일곱 명이고, 35명이 제주의 사람으로서 배를 몰 격군과 선원, 그리고 해적들을 만나면 싸울 군인 등이다. 

<표류 이야기>
해상에서 표류한 기록은 여느 서양의 여행기에서 표류를 하는 선장이나 상인들의 기록과 아주 비슷하다. 선원들끼리 싸움도 나고, 서로 원망도 하고, 그러던 와중에 다 같이 좌절해서 울기도 한다. 배를 타고 나가다가 고래도 만난다. 물을 뿜는 거대한 생물을 먼발치에서 보자 누군가가 "크면 배를 삼키고 작아도 배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스쳐가지만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라고 언급을 했다.

아무튼 조선 선비쯤 되면 표류 상황에서 점잖게 뒷짐을 지고 선비연 하거나, 아니면 당황하고 좌절해서 넋나간 행동을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선내에서 생긴 갈등을 조율하고 위기 상황의 의사결정을 해나간다. 직접 물을 퍼내거나 키를 잡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물론 기록을 남긴 사람이 최부 본인이고, 더더구나 임금에게 바치기 위해 쓴 기록이기 때문에, 본인의 역할을 조금 과장했을 것이다. 악의적/의도적 과장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법이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일행의 좌장이 최부인 것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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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몇 편을 썼고, 문학상 몇 개를 받았고, 번역서 몇 권을 냈습니다. 부업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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