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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받습니다] 우리집이 망했다
2023/11/07
독립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마민지입니다.
올여름 에세이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출간했습니다. 지난달까지 <얼룩소>에서 ‘죽음에 대한 수다'라는 글을 연재했는데요. 이번에는 유년기 시절 ‘IMF 외환위기'를 겪은 ‘K-장녀'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저의 첫 영화 <버블 패밀리>와 책은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었다'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유년기 시절에 IMF 외환위기를 통과하며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던 가족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신축 아파트에 살며 엄마를 따라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던 어린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춘기가 된 저는 드라마에서 보던 그 빨간 딱지가 붙은 컴퓨터 앞에 앉아 수행평가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통째로 바뀌었는데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빠르게 극복하고 지나간 과거의 일이었으니까요. 성인이 된 이후로는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속은 비어버린 ‘정상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과거에 건설 사업을 했지만 IMF 이후로 힘들어졌다는 것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부모님의 생애사를 인터뷰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80년대 서울 강남 일대에서 두 사람이 부동산 사업을 하며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소규모 건설업자, 즉 ‘집장사’(요즘 용어로는 ‘부동산 디벨로퍼')를 말하는데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을 이런 ‘집장사'들이 짓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동산과 관련된 일을 하며 다시 중산층이 되기를 꿈꾸는 부모님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인터뷰를 계기로 영화를 찍으며 두 사람이 왜 여전히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 개발의 흐름 속에서 부동산 투기의 광풍을 부추겼던 사회를 돌아보며 우리 가족의 삶이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과 주거 문제가 오늘내일 만 말하고 끝날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보니 영화를 만든 후로도 집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계속 쌓였습니다.
@kse4783 님 안녕하세요, 질문 감사합니다! 저도 학부 시절 강의를 듣다가 처음에는 과제로 구술사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인터뷰를 계기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만약 부모님이 아니라 타인이었다면 더 꼼꼼하게 준비했을 내용들을 미처 세심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는데요. 질문지를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는데 인터뷰어가 아닌 '자식'의 입장에서 미숙하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와 자식이 아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스스로 인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외동으로 노부모님 돌봄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윗세대의 가족 형태에서는 여러 형제가 함께 나누어 돌봄을 할 텐데 저 혼자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하니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공인인증서가 없는 부모님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어떻게 보면 조금 사소한 일들이었고 작년에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면서 병원과 아버지의 생활 두 부분을 모두 챙기느라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육아를 혼자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오직 한 사람이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돌봄 영역의 사회적 개입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건강과 생활을 챙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제작 중인 영화와 관련해서는 2020년부터 미투운동 이후 성폭력피해 생존자와 연대활동을 하던 예술인들이 함께 일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촬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마 그다음 작업은 돌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논픽션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작업은 저에게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더 확장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학부 시절에 영화 연출을 전공하기는 했으나 허구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역보다는 저를 둘러싼 현실 세계를 돋보기로 더 들여다보거나, 때론 멀찍이 떨어져 전반적인 구조를 살펴보는 작업 과정이 저에게 더 즐겁기 때문에 이런 작업 방식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찍 님, 질문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생애사 인터뷰를 하자, 라고 말씀드렸을 때 의외로 두 분 모두 흔쾌히 허락을 하셨습니다. '뭐 궁금한 게 있다고 굳이 인터뷰를 하냐'라고 하시면서도 의상도 나름대로 차려입으시고, 긴장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 존댓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시고 땀을 흘리시다가 옷이 안 어울린다며 옷을 갈아입고 오시기도 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부모님께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툭툭 내뱉었던 이야기들의 앞뒤 서사를 함께 알 수 있어서 가장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울산에서 살다가 서울에 이사 왔다, 라고만 알고 있던 내용이 '울산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서울에 있던 친척이 일 그만두고 서울 와서 사업을 하자'라고 설득해서 올라오게 됐다는 그런 맥락들을 알게 된 것이 참 좋았습니다. 또 친밀한 관계이다 보니 솔직하게 다 말씀해 주실 것만 같지만 의외로 남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가족이라서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경우에는 2차, 3차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하며 제가 궁금한 부분의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평소에 가족과 관계 맺는 방식과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도 '생애구술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저도 '노인복지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부모님에 대해 생애구술사로 인터뷰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인터뷰를 진행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시게 된 것인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70대가 훌쩍 넘어버린 부모님의 주거와 외동딸이자 ‘K-장녀'라는 말씀을 듣고 감독님의 삶 속에서 부양과 관련해서 어려운 점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감히요..). 요즘 외동인 친구들도 많아서 그런지 남일 같지 않고, 사랑과 부양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현실적으로 궁금합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 중에 있으신지, 현실을 영화로 표현하는 것에서 가장 큰 매력과 동력이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재미있고 마음에 와닿는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의 생애사를 인터뷰하셨다는 문장에 궁금해져서 여쭙습니다. 저도 부모님의 생애사를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있는데요. 의외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평소 관계가 친밀해서 오히려 낯간지럽다고 해야 하나ㅎㅎ 감독님은 그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진행하면서 생각과는 달랐던 점, 조심해야겠다 느꼈던 점 등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굿데이 님, 질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각 가구의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안전한 주거 환경이 보장되기 위해서 공공주택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간 주택이 감소해 품질이 나빠진다기 보다는 그것은 주택 공급과 무관하게 주택 시공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질러 품질이 나빠지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공주택이 많아진다는 것은 싸게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많아진다기 보다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과 안전한 주거 환경을 보장한다는 의미인데, 마치 실업급여로 여행을 다니면 안 되고, 생계급여로 돈까스를 먹으면 안 된다고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가난'에 대한 편견이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철빈 님, 질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철빈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는 막연히 기성세대가 만든 현재의 부동산 상황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적 맥락보다는 개개인의 욕망을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부자아빠'로 버티지 못한 부모님의 무능함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들을 살펴보면서 사회구조적 맥락이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화를 내야하는 대상은 욕망을 부추기고 나 몰라라 하는 사회(여기에는 정부 정책, 기관, 언론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어머니가 제 명의로 사주신 땅을 직접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날선 비판만 하던 제가 막상 제 땅에 방문해 보니 (기획부동산 땅이라 팔리지 않을 땅이지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없던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막상 당사자가 되니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기는구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동산으로 하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었고, 계속 고생하며 살다가 '영끌' 해서 집을 샀다는 친구네 부부를 비난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빈님과 마찬가지 질문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개인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맥락을 계속 살펴 보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개인에게는 정말 잘못이 없는 것인가? 라는 도돌이표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보면 참 양가적인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땅을 파셨는데요. 부동산을 통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이 안 될 부동산을 팔아 돈을 버는 모습이 너무나 아이러니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살아보고 나서야 (제가 보기에는)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셨습니다. 그때 아, 직접 경험해봐야 변하는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기 전까지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비난을 하고 논리적으로 때론 감정적으로 설명을 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부분이더군요...! 그래도 두 분이 좀 더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안전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며 이전에 가지고 있던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라는 구분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으로 모두 귀결시키면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드러낼 곳이 없는 것 같아서요.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판하는 것과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목소리를 내며 비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요. 구조적 맥락에서 그 사람을 위치시키고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선택을 비판하는 것을 구분해서 생각하려 합니다...! 개인의 성격 차이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무대뽀로 무소의 뿔처럼... 비판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고민하며 저를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공공주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요, 공공주택이 많아지면 민간 주택이 감소해 전체적인 공급이 감소하고 품질이 나빠져서 시장경제적으로는 좋지 않다(?)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공공주택을 많이 짓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 또한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여러 대응 활동을 하느라 한국의 부동산 역사를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글과 시사인 인터뷰를 읽으면서 영화와 책 모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만큼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상황의 상호 역동을 잘 보여주는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부모님께서 집장사를 하셨던 시기는 '사회와 경제가 성장하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오는 상황'에서 '부를 쌓고자 했던 감독님 부모님의 욕망 + 삭막한 도시에서 '안정적인 내집마련'이 꿈인 서민층의 욕망 + 땅을 팔아 돈을 벌고 더 좋은 주거환경으로 이주하고자 했던 원주민들의 욕망'이 한데 교차한 것 같아요.
그렇게 가속화된 부동산 개발/투자 중심 사회구조는 시간이 지나 전월세 가격의 상승과 모두가 건물주 되고싶어하는 사회, 부실한 세입자 주거정책으로 이어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전체적인 집값은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만, 내 집값은 안 떨어졌으면 좋겠고, 예전부터 그래왔던 부동산 시장에서 굳이 내가 손해보기는 싫은 모순적 상황도 관찰됩니다. 그렇다면 저희 청년들 그리고 이후의 미래 세대는 이런 과거에 대해 '옳다, 그르다, 좋다, 아쉽다' 가치판단할 수 있는가 고민이 들어요. (마음 같아서는 기성세대를 막 욕하고 싶으나, 저도 부모님이나 어른들과 대화해보며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가 예전보다는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면한 현실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또 아니니까 난감하구요.)
또한, 최근 몇년간 '벼락거지', '영끌', '부동산 막차' 등이 유행어가 된 것에서 보듯 너도나도 빚을 내서 '내집마련'을 해야한다는 개인의 소박한 소망이 사회적으로 유행했는데요. 결국 이런 부동산 광풍이 가계대출 폭증과 국가경제의 리스크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맥락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또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게 건강할까), 우리는 이런 현상에 무엇이라 말해야하는가 고민이 됩니다.
저는 전세사기를 당했고, 한국사회의 여러 부동산 부조리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고 개선하자고 하는 반면에, 반대 극단에서는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갭투자를 해서 다주택자가 되거나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를 준비하며 임장투어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산 증식을 위한 재테크/자기계발인데 투기꾼으로 오해받는게 억울하다며 항변하시는데요. 그런 분들을 접할때 저는 참 뭐라 말하기 힘든 헛헛함을 느낍니다.
결국 질문은 이렇습니다.
개인은 사적 영역도 있지만, 사회적인 존재로도 존재하는데요. 개인의 욕망에 대해 타인이 칭찬하거나, 비판하거나 등의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나름 그럴듯한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건강하다고 느껴지지 않다면 우리는 타인에게(심지어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할까요?
다큐와 책을 쓰시며 느끼셨던 점이 궁금합니다. (쓰다보니 제가 보기에도 참 난해하고 어렵네요. 양해를 구합니다.)
안녕하세요 @Sospcoco 님. 질문 감사합니다 :)
- 외동이라서 살아오면서 좋았던 점은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힘들었던 점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 연세가 많아지시면 자녀들이 아무래도 건강이나 생활을 챙기게 되는데 이 부분을 나눌 형제가 없다는 것이 아무래도 정신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원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때로는 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외동으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저는 때론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일때부터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는 제가 모든 것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내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습관을 가지고 사회화하는데 스스로 노력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요즘 임신, 출산, 육아는 부모의 애정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게 더 나은 것 같다, 의견을 피력하기가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는 형제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님 연세가 많다는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형제도 결국에는 타인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형제인지 아닌지에 따라 너무 다르지 않을까요?
- 일단 원하던 건축 공부를 했을 것 같고, 결국에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ㅎㅎ
책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구입해야겠어요. 이 글을 읽으니까요.
그래도 읽기 전에 궁금한 점이 생기네요?
- 외동딸이라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과 좋았던 점이 궁금합니다.
_ 외동은 사랑을 많이 받아서 멘탈이 좋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너무 의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감독님은 전자일 것 같긴 한데요. 외동 아이의 성장을 담당하고 있는 양육자에게 외동으로 자라온 성인 입장에서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 제 주변의 외동들은 다들 사랑을 잘 받고 잘 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외동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은 무조건 형제 나으라고 하잖아요. 이런 말들에 관해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가요?
- 집이 안 망하고... 영화감독이 안 됐다면.... 어떤 삶을 살고 계실 것 같으세요?
안녕하세요 @이철빈 님, 질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철빈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는 막연히 기성세대가 만든 현재의 부동산 상황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적 맥락보다는 개개인의 욕망을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부자아빠'로 버티지 못한 부모님의 무능함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들을 살펴보면서 사회구조적 맥락이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화를 내야하는 대상은 욕망을 부추기고 나 몰라라 하는 사회(여기에는 정부 정책, 기관, 언론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어머니가 제 명의로 사주신 땅을 직접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날선 비판만 하던 제가 막상 제 땅에 방문해 보니 (기획부동산 땅이라 팔리지 않을 땅이지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없던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막상 당사자가 되니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기는구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동산으로 하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었고, 계속 고생하며 살다가 '영끌' 해서 집을 샀다는 친구네 부부를 비난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빈님과 마찬가지 질문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개인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맥락을 계속 살펴 보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개인에게는 정말 잘못이 없는 것인가? 라는 도돌이표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보면 참 양가적인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땅을 파셨는데요. 부동산을 통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이 안 될 부동산을 팔아 돈을 버는 모습이 너무나 아이러니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살아보고 나서야 (제가 보기에는)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지셨습니다. 그때 아, 직접 경험해봐야 변하는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기 전까지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비난을 하고 논리적으로 때론 감정적으로 설명을 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부분이더군요...! 그래도 두 분이 좀 더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안전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며 이전에 가지고 있던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라는 구분은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적으로 모두 귀결시키면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드러낼 곳이 없는 것 같아서요. 개인적인 관계에서 비판하는 것과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목소리를 내며 비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요. 구조적 맥락에서 그 사람을 위치시키고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선택을 비판하는 것을 구분해서 생각하려 합니다...! 개인의 성격 차이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무대뽀로 무소의 뿔처럼... 비판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고민하며 저를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 또한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여러 대응 활동을 하느라 한국의 부동산 역사를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글과 시사인 인터뷰를 읽으면서 영화와 책 모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만큼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상황의 상호 역동을 잘 보여주는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부모님께서 집장사를 하셨던 시기는 '사회와 경제가 성장하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오는 상황'에서 '부를 쌓고자 했던 감독님 부모님의 욕망 + 삭막한 도시에서 '안정적인 내집마련'이 꿈인 서민층의 욕망 + 땅을 팔아 돈을 벌고 더 좋은 주거환경으로 이주하고자 했던 원주민들의 욕망'이 한데 교차한 것 같아요.
그렇게 가속화된 부동산 개발/투자 중심 사회구조는 시간이 지나 전월세 가격의 상승과 모두가 건물주 되고싶어하는 사회, 부실한 세입자 주거정책으로 이어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전체적인 집값은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만, 내 집값은 안 떨어졌으면 좋겠고, 예전부터 그래왔던 부동산 시장에서 굳이 내가 손해보기는 싫은 모순적 상황도 관찰됩니다. 그렇다면 저희 청년들 그리고 이후의 미래 세대는 이런 과거에 대해 '옳다, 그르다, 좋다, 아쉽다' 가치판단할 수 있는가 고민이 들어요. (마음 같아서는 기성세대를 막 욕하고 싶으나, 저도 부모님이나 어른들과 대화해보며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가 예전보다는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면한 현실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또 아니니까 난감하구요.)
또한, 최근 몇년간 '벼락거지', '영끌', '부동산 막차' 등이 유행어가 된 것에서 보듯 너도나도 빚을 내서 '내집마련'을 해야한다는 개인의 소박한 소망이 사회적으로 유행했는데요. 결국 이런 부동산 광풍이 가계대출 폭증과 국가경제의 리스크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맥락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또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게 건강할까), 우리는 이런 현상에 무엇이라 말해야하는가 고민이 됩니다.
저는 전세사기를 당했고, 한국사회의 여러 부동산 부조리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고 개선하자고 하는 반면에, 반대 극단에서는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갭투자를 해서 다주택자가 되거나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를 준비하며 임장투어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산 증식을 위한 재테크/자기계발인데 투기꾼으로 오해받는게 억울하다며 항변하시는데요. 그런 분들을 접할때 저는 참 뭐라 말하기 힘든 헛헛함을 느낍니다.
결국 질문은 이렇습니다.
개인은 사적 영역도 있지만, 사회적인 존재로도 존재하는데요. 개인의 욕망에 대해 타인이 칭찬하거나, 비판하거나 등의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나름 그럴듯한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건강하다고 느껴지지 않다면 우리는 타인에게(심지어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할까요?
다큐와 책을 쓰시며 느끼셨던 점이 궁금합니다. (쓰다보니 제가 보기에도 참 난해하고 어렵네요. 양해를 구합니다.)
공공주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요, 공공주택이 많아지면 민간 주택이 감소해 전체적인 공급이 감소하고 품질이 나빠져서 시장경제적으로는 좋지 않다(?)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공공주택을 많이 짓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구입해야겠어요. 이 글을 읽으니까요.
그래도 읽기 전에 궁금한 점이 생기네요?
- 외동딸이라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과 좋았던 점이 궁금합니다.
_ 외동은 사랑을 많이 받아서 멘탈이 좋은 경우가 있고 반대로 너무 의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감독님은 전자일 것 같긴 한데요. 외동 아이의 성장을 담당하고 있는 양육자에게 외동으로 자라온 성인 입장에서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 제 주변의 외동들은 다들 사랑을 잘 받고 잘 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외동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은 무조건 형제 나으라고 하잖아요. 이런 말들에 관해 감독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가요?
- 집이 안 망하고... 영화감독이 안 됐다면.... 어떤 삶을 살고 계실 것 같으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도 '생애구술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저도 '노인복지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부모님에 대해 생애구술사로 인터뷰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인터뷰를 진행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시게 된 것인지,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70대가 훌쩍 넘어버린 부모님의 주거와 외동딸이자 ‘K-장녀'라는 말씀을 듣고 감독님의 삶 속에서 부양과 관련해서 어려운 점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감히요..). 요즘 외동인 친구들도 많아서 그런지 남일 같지 않고, 사랑과 부양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현실적으로 궁금합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 중에 있으신지, 현실을 영화로 표현하는 것에서 가장 큰 매력과 동력이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재미있고 마음에 와닿는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의 생애사를 인터뷰하셨다는 문장에 궁금해져서 여쭙습니다. 저도 부모님의 생애사를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있는데요. 의외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평소 관계가 친밀해서 오히려 낯간지럽다고 해야 하나ㅎㅎ 감독님은 그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진행하면서 생각과는 달랐던 점, 조심해야겠다 느꼈던 점 등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굿데이 님, 질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각 가구의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안전한 주거 환경이 보장되기 위해서 공공주택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간 주택이 감소해 품질이 나빠진다기 보다는 그것은 주택 공급과 무관하게 주택 시공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질러 품질이 나빠지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공공주택이 많아진다는 것은 싸게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많아진다기 보다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과 안전한 주거 환경을 보장한다는 의미인데, 마치 실업급여로 여행을 다니면 안 되고, 생계급여로 돈까스를 먹으면 안 된다고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가난'에 대한 편견이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녕하세요 @Sospcoco 님. 질문 감사합니다 :)
- 외동이라서 살아오면서 좋았던 점은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힘들었던 점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 연세가 많아지시면 자녀들이 아무래도 건강이나 생활을 챙기게 되는데 이 부분을 나눌 형제가 없다는 것이 아무래도 정신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원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때로는 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외동으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저는 때론 답답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일때부터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에서는 제가 모든 것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내 것을 타인에게 나누는 습관을 가지고 사회화하는데 스스로 노력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요즘 임신, 출산, 육아는 부모의 애정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게 더 나은 것 같다, 의견을 피력하기가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는 형제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님 연세가 많다는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형제도 결국에는 타인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형제인지 아닌지에 따라 너무 다르지 않을까요?
- 일단 원하던 건축 공부를 했을 것 같고, 결국에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