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특설대가 독립운동?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2023/09/05
간도특설대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논문을 찾아봐도 몇 편 나오질 않는다.
간도특설대라고 하면 대체로 그 유명한 백선엽을 떠올릴 텐데, 76년부터 유사역사학의 기관지 노릇을 한 월간 <자유>의 발행인 박창암도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그는 만주를 회복해야 할 고토로 생각하고 호도 만주라고 지었다. 1985년 김태영이 쓴 소설 <다물>의 주인공은 최만주인데, 박창암을 모델로 해서 쓴 것이다.
이 책에 박창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왜곡된 부분이 있다 하여 박창암이 항의했고 그에 따라 수정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박창암이 간도특설대에 들어간 이유가 나온다.
간도특설대라고 하면 대체로 그 유명한 백선엽을 떠올릴 텐데, 76년부터 유사역사학의 기관지 노릇을 한 월간 <자유>의 발행인 박창암도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이 책에 박창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왜곡된 부분이 있다 하여 박창암이 항의했고 그에 따라 수정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박창암이 간도특설대에 들어간 이유가 나온다.
이청천 장군은 일본군을 떠나서 직접 왜적과 무장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었지만 홍사익 장군은 끝까지 일군 안에 남아서 미래의 항일 독립군을 양성하려고 했기 때문에 표면에서 감추어진 것이죠. 바로 그분이 심사원려 끝에 관동군 고위층을 움직여 만들어 낸 것이 만주군 내의 한인 특수 부대였는데 만주 선생은 바로 이 부대에 입대하여 분대장으로 계셨답니다.
그후 해방되기 2년 전 12월에는 홍사익 장군이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길러낸 박대붕 대위(만주 구제군관학교 7기생)가 이끄는 <건국동맹 군사부>라는 지하조직 요원으로 선임되었죠. 바로 이들을 근간으로 한 신병 교육대가 창설되어 앞으로 비상 시에 사병은 하사관으로 하사관은 장교로 편성될 수 있도록 간부화 교육이 진행되었죠. (86쪽)
그런데 제1중대 김백일 대위의 반란 사건이 일어나 한인 특수부대가 해체나 다름없게 되었고 4개월 뒤에 8.15를 맞이했다고 이 소설에는 나온다. 과연 그럴까?
소설에 나오는 박대붕은 박승환(1918~1948?)을 가리킨다. 박승환은 여운형의 지시로 만주군에 투신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 이야기...
@ryrl121233 박창암은 졸개였기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에 안 들어왔을 뿐이죠. 간도특설대 출신 중 10명만 대상이 되었습니다.
본문 글의 핵심적인 모순은 이런 구절이죠.
"잔인무도하기 이를 데 없었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박창암이 역사학자들을 향해 식민사학자, 사적(史敵), 고등간첩균의 기생체라는 등의 소리를 하면서 욕을 해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당황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창암이 '역사학자'(맥락상 주류 한국사학자)를 비난한 게 당황스럽다고 명시했었는데,
한국사학계의 주류가 집필한 친일인명사전의 언급을 제외해서 본문 글의 모순을 숨기고 있습니다.
박창암은 한국 사학계(일제강점기 분야) 주류에서 조차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난 인물입니다. 이건 본문 글의 주제를 기준으로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본문글은 박창암의 행적을 추적하는 글에 주제에 중심이 됐는데 정작 주류 한국사학계의 평가가 빠져있군요.
한국사학계의 주류학자(명단을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 가능.이덕일은 당연히 명단에 없음)들로 집필된 친일인명사전에서 박창암은 친일인명사전에서 제외됐습니다.
이 게시글의 저자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학계측에서 활동하는 학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친일인명사전과 관련된 내부자료를 확인해보는 검증은 거치셨나요? 그런 사실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습니더.
유사역사학의 배경이 친일이 아닐 수도 있는 중요한 사실인데, 이런 핵심적인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