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청년이 있었지요
달리기가 좋았고 누구보다 멀리 빠르게 달렸지요
조선에서 1등
일본 전체에서 1등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시내를 뛰었고 히틀러가 자랑하던 독일 청년마저 이겼답니다
자랑스러운 시상대앞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채 땅만 바라 보는 청년
,'기테이 손' - 손 기 정
일본인 자랑
조선인 자랑
무용가 최승희선생은 고개 숙여 부끄러움을 생각해 보셨는지?
그녀의 춤은 반도.내지를 넘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전파하는 꼭두각시는 아니였는지 궁금합니다.
달리기가 좋았고 누구보다 멀리 빠르게 달렸지요
조선에서 1등
일본 전체에서 1등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시내를 뛰었고 히틀러가 자랑하던 독일 청년마저 이겼답니다
자랑스러운 시상대앞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채 땅만 바라 보는 청년
,'기테이 손' - 손 기 정
일본인 자랑
조선인 자랑
무용가 최승희선생은 고개 숙여 부끄러움을 생각해 보셨는지?
그녀의 춤은 반도.내지를 넘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을 전파하는 꼭두각시는 아니였는지 궁금합니다.
'기테이 손', 식민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승희의 친일 행적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있으니까요. 다만, 일본군을 따라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전장에 위문공연을 다녀야 했던 조선의 무희 최승희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최승희는 꼭두각시였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그를 내선일체의 아이콘이자 성공적인 식민지화의 결과로 내세우고자 했으니까요. 최승희는 그 위문공연에서 다른 식민지 민족 사람들을 만날 때면 조선을 더 많이 떠올렸다고 합니다.
일제와 함께 다닌 3년의 해외 공연에서도 '일본의 사키초이'가 아니라 '조선의 최승희'라는 이름으로 조선무용을 선보였고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 문화권력에 의한 공적인 에로티시즘일지언정 그 속에서 최승희는 나름의 '조선무용'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문외한
손기정선수는 즐어 봤답니다
곤기정.최승희 삶에서 식민 조국의 아픔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