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이 마지막 본 영화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소설가
2024/04/15
<피아니스트의 전설> - 네이버 영화
   기형도(1960∼1989)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떠난 뒤였다. 그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입』(1989)을 읽고 또 읽었다. 왜 그의 시들을 읽을 때마다 죽음이 보인다고 느꼈을까. 

   그는 영화관에서 떠났다. 1984년 2월,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촌형과―같은 해에 대학을 입학했기 때문에 형과 동생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지냈던 사촌간이었다―미아리 대지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사람이 없는 심야시간이었고 영화 두 편을 틀어주었다. 500원이었는지 1000원이었는지, 어떤 영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극장 안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특수효과처럼 담배연기가 스크린을 지나 사라지기도 했다. 몇 년 뒤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만난 후에, 그가 마지막 본 영화가 어느 영화였을까를 생각할 때마다 대지극장이 떠올랐다. 

    무수한 영화들이 떠올랐지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떤 영화였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영화는 생을 장식할 뿐이다. 통째로 장식하지는 못한다. 드문드문, 구절구절, 띄엄띄엄 장식할...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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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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