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은 당신의 것인가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4/27
집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취향 

  취향이란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들어와 박혔다. 그 뒤로 내내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도시의 빈민층이라 볼 수 있는 청년인 미소는 월세가 오르자 집을 포기하고 만다. 그 와중에도 미소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두 가지는 위스키와 담배다. 여기까지 말하면 누군가는 살 집도 없는 마당에 술 담배에 돈을 쓴다며 혀를 끌끌 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소에게 취향은 단순한 선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존재의 이유와도 같은. 

  집을 잃은 미소는 예전에 함께 밴드를 하던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취향 대신 돈이나 가족, 생계 등을 선택해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걸 '현실과의 타협'이라고 말한다.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나이가 있고, 그 나이가 되면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한다. 80억 명이 넘는 인구의 삶이 매한가지라는 듯, 그런 과정을 밟지 않는 사람들은 철이 덜 든 거라는 듯, 보편의 길을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은 거세되고 타인의 취향이 마치 내 것인양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미소는 머리가 하얗게 새어가는 병을 앓고 있는데 그 병의 진행을 막지 않는다. 막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막지 않는 느낌이다. 한강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마지막 모습에서 미소의 취향이야말로 얼마나 오롯한 것인지를 절감했다. 미소가 사랑하는 건 단순히 위스키 한 잔이라기보다 그 잔에 담긴 향과 맛, 바의 공기와 조금씩 음미하며 들이키는 시간까지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내게는 그런 취향이 있던가. 집을 포기하면서도 반드시 누려야만 할 만큼 절실한 취향이 내게 있을까.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무언가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삶이 참 고귀해보였다. 그게 술일지라도 그게 담배일지라도. 사실 나는 미소처럼 집을 포기해서라도 누리고자 하는 취향이 없다. 소소하게 선호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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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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