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9
앞서 주자의 사상적 지향은 윤리학과 물리학의 결합에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주자는 이를 통해 귀족정치의 폐해를 혁파하고 질서 있는 도덕사회의 도래를 희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물리의 세계를 하나로 풀어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물리와 윤리를 결합하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선택의 기초가 되는 물리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틀을 갖춰야만 했던 것입니다. 주자는 이를 이기론으로 풀고자 했고, 이 점에서 그의 이기론은 세계에 대한 해석체계라 할 수 있다. 세계 내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풀어내고자 한 그의 의도에 귀신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귀신관 역시 이러한 그의 사상적 프로젝트에 빗겨가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여러 글에서 주자는 귀신이라는 실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주자의 합리성에 기초해서 그가 귀신을 부정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자는 분명 귀신이란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귀신과 관계되는 일은 본디 제의적인 것이다.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귀신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굳이 이해하려들 필요가 없고, 우선 일상의 긴요한 곳에 나아가 공부해야 한다.”(“鬼神事自是第二著. 那箇無形影底, 是難理會底, 未消去理會, 且就日用緊切處做工夫.” , 『朱子語類』 卷3)
위 인용문을 보면 주자는 매우 현실적인 판단 속에 귀신이란 존재를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제의’입니다. 주자가 기대고 있는 유학전통에서 제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유학의 핵심 개념인 ‘효’를 실제 생활에 에토스로 삼기 위해서라도 제사는 지나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기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사의 핵심을 이루는 조상신을 무시하고는 유학이 설 자리가 애매해집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제사의 합리적 설명을 위해서라도 귀신이란 존재는 규명되고, 합리적 설명 속에 들어와야만 했습니다.
이때 주자가 취한 태도는 이기의 입장에서 귀신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자가 보기에 귀신은 기의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그런 ...
독일 Marburg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학위 후 귀국하여 지금은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 관심 분야는 ‘동아시아 종교’와 ‘해석학적 문화 비평’이며, 제대로 된 <한국종교사상사>를 펴내는 오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윤신영 부족한 글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주자 전공자가 아니라 과문한 탓에 제대로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역의 음과 양은 우주적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양 축이라 한다면, 귀와 신은 그것이 인간에게 국한된 개념으로 봐야 하기에 규모의 차이는 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귀와 신 역시 음과 양의 확장이기에 그것이 가지는 특성과 용례는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와 인간의 스케일이 가지는 차이는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공자께선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술이의 언급 때문에 흔히 유학(적어도 신유학)은 합리주의를 강조했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유학의 귀나 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놀라웠습니다. 주자도 귀와 신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기, 주역의 음과 양의 동사적 세계관이 귀와 신에게도 연장된다고 보셨는데요. 주역의 경우 음과 양의 변화와 교체, 순환이라는 특성도 중요하지만, 효가 제자리(정위)에 있지 못할 때나 음과 음/ 양과 양이 서로 인접해 있을 때 생겨나는 대립과 충돌, 긴장의 역학 관계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말씀하신 윤리와 물리가 닿는 현실 정치 안에 있다면 더욱 그런 속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만약 귀와 신을 순환이라는 동사적 세계관 이외에 이런 대립과 충돌, 긴장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아주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공자께선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술이의 언급 때문에 흔히 유학(적어도 신유학)은 합리주의를 강조했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유학의 귀나 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놀라웠습니다. 주자도 귀와 신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기, 주역의 음과 양의 동사적 세계관이 귀와 신에게도 연장된다고 보셨는데요. 주역의 경우 음과 양의 변화와 교체, 순환이라는 특성도 중요하지만, 효가 제자리(정위)에 있지 못할 때나 음과 음/ 양과 양이 서로 인접해 있을 때 생겨나는 대립과 충돌, 긴장의 역학 관계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말씀하신 윤리와 물리가 닿는 현실 정치 안에 있다면 더욱 그런 속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만약 귀와 신을 순환이라는 동사적 세계관 이외에 이런 대립과 충돌, 긴장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