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과 '불가항력'을 대하는 자세

허태준
허태준 · 작가, 출판 편집자
2022/11/17
  오늘은 합정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과장님을 따라 파주에 인쇄 감리를 보러 갔다. 그런데 시외 버스를 탄지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인쇄소에서 이유 모를 기계 고장으로 1시간 정도 일정이 미뤄질 거라는 연락이 왔다. 이미 버스는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달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인쇄소가 본사 근처에 있어서 감리 이후 가려던 신입 인사를 먼저 가기로 했다. 처음 보는 본사 건물에 들어가 이야기만 전해 들었던 직원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 카페에서 과장님의 과거 인쇄 사고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 나오고 기분 좋게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바코드가 안 찍힌다는 연락이 왔더란다. 당황해서 기존 바코드 이미지와 인쇄된 바코드 이미지를 하나하나 비교해보니, 그제야 바코드에 선 중 하나 빠진 게 보였다고 했다. 그럴 수가 있는 거에요? 나는 지금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바코드는 보통 이미지가 하나로 묶여서 작업이 되기 때문에 어딘가를 지우거나 임의로 삭제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원인불명의 재앙인 것이다.
  이후 심란한 마음으로 이틀동안 창고에서 스티커 작업을 하셨다고, 그 스티커를 한동안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셨다고 했다. 당시 편집한 책은 좋은 평가도 받고 잘 되었다고. 회사에서도 액땜 잘했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심란한 마음'이라는 단어로 축약된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아마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고, 당장 어딘가로 도망가 핸드폰을 꺼버리고만 싶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전화를 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당장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왜 미리 더 확인하고 챙겨볼 걸 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편집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허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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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이란 이름으로 일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습니다. 현재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청년》의 책임편집 및 공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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