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주변인으로 살기

이가현
이가현 인증된 계정 · 페미니스트 정치활동가
2023/02/08

남자 못 버린 페미니즘 

이전화 - 암호명 '저도 남자 싫어해요'
가해 : 남의 생명·신체·명예·재산 등에 해를 끼치는 것. 순화어는 `해를 끼침'. (옥스포드 사전)
   
우리는 살면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다. 나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반성 및 사과하고 변화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뉠 뿐이지 세상이 가해를 하지 않은 사람과 가해자로 나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가 가벼울 때에 가해자는 기꺼이 사과한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피해가 심각할 때 사과는 어려워진다. 가해 행위에 악한 의도가 없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거나, 실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행위가 큰 피해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법정에서는 결과, 의도, 인과를 모두 따지지만 일상에서는 피해의 크기가 잘못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다고?’는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고?’로 연결된다. 여기다가 ‘더 잘못한 다른 사람들은?’까지 더해져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억울한 마음에 압도되어 버린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미리 전제처럼 말해두지만, 누구나 가해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잘못의 중함을 덜어내는 것은 아니다. 악의 평범성이 가해자의 억울함을 대변해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번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시시때때로 가해 행위가 일어나는 가운데에 가해자의 주변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이다. ‘남자 못 버린 페미니즘’에서의 주된 고민 중에는 페미니스트로서 가해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하고 관계를 맺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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