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이철 · 철학자
2024/05/11
2장에 나오는 반대되는 것들은 모두 정반대되는 것인데, 유일하게 선에 대해서만 노자는 선하지 않음을 얘기했습니다. 
   
모두 선으로 알고 있는 것을 선이라 여기는데     개지선皆知善,
그것은 선하지 않음일 수 있다.                            차기불선의此其不善矣.
-2장
   
왜 그랬을까요? 지금부터 이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뵈러 춘천에 갔다가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몇 정거장 안 가서 한쪽 팔에 기부스를 하시고 계란 꾸러미를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타시더군요. 예순은 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분이 제가 앉은 자리 옆에 와서 서시는 겁니다. 속으로 잠깐 고민했습니다. 한쪽 팔에 기부스까지 했는데,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그런데 당시 저도 요즘 다리가 안 좋아서 서 있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자리 양보를 안했습니다. 당시 버스 앞에 승용차가 가고 있었는데,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자 앞에 있던 승용차가 급정거를 했고, 뒤쫓아 가던 시내버스도 급정거를 했습니다. 내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는 붕 떠서 날아가고, 서 계시던 몇몇 분들도 쓰러지고 부딪치고,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주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고는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더군요. 아마 제가 진작에 양보했다면 아주머니가 날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속으로 좀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해봅시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저는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면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선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렇죠? 이에 대해 논의하려면 선과 악의 정의가 필요할 겁니다. 먼저 선에 대해 정의해 봅시다. 선이란 무엇입니까? 몇 년 전부터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보이길래 한번 검색해봤더니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이더군요. 
   
‘선한 영향력’이 요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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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고대 고전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주역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스스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주역 공부》를 비롯하여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 사건》, 《가슴에는 논어를 머리에는 한비자를 담아라》, 《논어 암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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