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철학과 처세법 2.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생성하고 소멸하므로 하나다
2024/05/06
제가 《도덕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는 한 십여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다들 《도덕경》하면 무위자연을 생각하시죠. 저도 처음에는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위자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도덕경》을 이해했었죠. 그런데 몇몇 구절이 가슴에 턱턱 걸리면서 명료하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무無와 관련해서는 2장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 낳는다(유무지상생야有無之相生也).
없음은 없음인데 어떻게 무엇을 낳는다는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죠? 그런데 이에 대해서 기존에 나와 있는 해설서에는 딱히 논리적으로 명료한 설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해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고 있는데, 어느 책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무로부터의 우주
무로부터의 우주라니, 그럼 없음으로부터 우주가 생겨났단 말인가? 저자는 로렌스 크라우스라는 한 물리학자였습니다. 출판사는 승산. 수학과 과학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였습니다. 사이비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노자에 나오는 무無에 대해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책장을 덮은 순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無라는 거야, 뭐야?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결론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무라고 주장하는 것을 신학자들은 양자요동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봐도 그게 진짜 무無인지 잘 이해가 안 되더군요. 왜 신학자들이 끼어드냐면, 무로부터 우주가 생겨났다는 것이 인정되면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가 필요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과학 논쟁에 신학자가 참여하더군요. 그래도 저자는 양자요동을 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여튼, 결론은 과학으로 노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여전히 없음으로부터 어떻게 있음, 물질, 우주가 나올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