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 만화 <풀> :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13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으로 양분되어 있다. 식민사관에 물든 자들은 조선인 징모 업자와 여성들이 돈에 미쳐서 저지른 짓이라며 왜곡하고, 민족사관 신봉자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서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라고 분노한다. 전자와 후자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모두 피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포착된다. 창녀와 성녀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의 소녀들’이 아니면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가?, 정말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 어째서 수요 시위에 나선 할머니들의 멱살까지 잡으면서 “더러운 일 당했으면 입 다물고 있을 것이지, 어딜 기어 나와 나라 망신을 시키느냐”라며 욕지기를 퍼부은 것인가?

늘 그렇듯 어느 위치에서 역사를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맥락 없는 분노를 터뜨리지도, 시니컬한 조소를 날리지도 않으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개인의 역사는 구조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만화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하비상 수상작 <풀>은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복원한 작품이다. 식민지 조선, 그것도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옥선’은 ‘핵교’ 보내준다는 말에 우동집 수양딸로 입양된다. 돈 몇 푼에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문 문턱은 밟지도 못했고, 곱게 땋은 긴 머리카락마저 잘렸다. 혹독한 식모살이를 하던 어느 날, 옥선은 주인집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일본 남성들의 손에 납치되어 중국 연길로 끌려갔다. 그때가 1942년, 겨우 열여섯이었다.

나이도, 지역도 다른 여성들이 행선지도 모른 채 트럭에 몸을 실은 이유는 어슷비슷했다. 결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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