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와 자유시참변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08/30
세계 제2차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은 연합군으로 파시즘 국가인 독일, 일본 등과 싸웠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세상이긴 한데, 오늘의 적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행위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홍범도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 자체는 오늘날 동상을 이전하겠다는(그나마 철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력에서도 인정하는 팩트다. 물론 극우 세력들은 홍범도의 전과(戰果)조차 깎아내리고자 혈안이 되어있긴 하지만.

유사역사가들이 허구헌날 "친일식민매국사학"이라고 욕하는 역사학계에서 홍범도에 대한 연구가 엄청 진척되어 있다. 어제만 해도 역사학자들을 욕하고 있던 유사역사가들은 이제 "친일식민매국사학자"들의 논문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독립운동사 연구를 안 한다고 하던 유사역사가들, 어디 숟가락 좀 얹어보시지? 그들이 낯짝이 있다면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하다.

1. 자유시 참변에 이르기 전의 러시아 한인의 역사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두만강을 넘어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제정러시아의 땅으로까지 옮겨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러시아에 있는 한인은 두 종류였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원호인과 러시아 국적이 없는 여호인이 그 두 종류다.

러시아의 한인들도 자치 대표기관을 설립하고자 했다. 1917년 6월 3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모여 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여기서 원호인들은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여호인들에게는 의결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케렌스키는 독일과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일본을 동맹으로 여겼다. 이 점에 반발하는 한인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총회에 불만을 품은 한인들은 대회장을 탈퇴하여 하바롭스크에 모여 원호와 여호의 구분 없이 모든 한인을 대표하는 단체를 건립하고자 했다. 이들은 소비에트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이었다.

1918년 1월 27일 하바롭스크에서 전로한족대표자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결성되었다. ...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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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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