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종로로 향한 까닭은
2023/08/19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세 사람 – 이응호, 서왈보, 안창남
근대 초기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과 매혹을 선사한 첨단 문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 비행기였을 테다. 거친 엔진음을 내며 철제 프로펠러를 무섭도록 팽팽 돌려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는 과연 ‘모던’이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하게 하는 대상이었다. 비행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고, 비행기는 그 이상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장치였다. 거대한 기계가 전례 없는 속도로 하늘을 빠르게 날아가는 장면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는 강력한 표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는 누구였을까? 우리나라 사람 열에 아홉은 안창남을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로 알고 있다. 1922년 12월 10일 안창남은 ‘금강호’를 타고 조선인 최초로 경성 하늘을 비행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가 당시 유행가의 노랫말로 쓰일 정도였다. 당시에도 대중에게 최초의 비행사는 안창남으로 많이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안창남보다 더 빨리 비행사가 됐던 조선인이 있었다. ‘이응호’와 ‘서왈보’가 그렇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1차세계대전 말미였던 1918년 미국 공군에 조종사로 임관한 이응호와 1919년 중국 남원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비행사가 된 서왈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921년 일본에서 파일럿 시험을 통과해 비행사가 된 안창남보다 2~3년 더 빠른 셈이다. 다만 안창남이 일본에서 비행기술을 배운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활동했다면, 이응호는 미국에서 서왈보는 중국에서 계속 비행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테크놀로지의 문화사인 동시에 가슴 아픈 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네뇨.
엄복동도 끼어 있네요.
@만수르 네. 감사합니다.
@해홍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차랑 같이 묶으면 되겠네요.
이응호와 서왈보. 처음 알았어요.
@임영환 아따. 참말로. 형님 왔소. ㅎㅎ
부원아! 잘 봤다.
이응호는 처음 듣는 인물입니다. 관련해서 자료가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네요.
@aggremon_f 이런 이야기 많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너무 좋아요.
@몬스 그렇죠. 당시로서는 조선인 비행사의 첫 시험비행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정밀하게 계산 못한 면도 있습니다. 총독부 고위직 관료, 일본인 정치인, 재조 일본인 사업가 중에서도 안창남 시범비행에 후원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1922년 시점의 묘한 특수국면이라고 봐야겠죠. 3.1운동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고, 1930년대 중반 중일전쟁 시작된 후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데. 1920년대는 바로 그 사이 시기에 ‘문화통치’를 내걸고 있었던 때니까요. 안창남 비행이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게 될지 정확하게 몰랐다고 봐야죠.
@김현우 이응호와 서왈보가 안창남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자료와 기록이 많이 공개돼 그나마 알려지는 추세입니다. 누가 가장 먼저냐를 구분하는 것보다 그 무렵 조선인 비행사들의 꿈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어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행에 낭만이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엄복동도 끼어 있네요.
전차랑 같이 묶으면 되겠네요.
이응호와 서왈보. 처음 알았어요.
부원아! 잘 봤다.
@aggremon_f 이런 이야기 많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너무 좋아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후원까지 했다니 하나의 사건에 담긴 서로 다른 시각들에 당시 시대의 역동감이 느껴집니다. 설명을 듣고 종로 비행사진을 보니 더 의미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