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뚫리는 기적

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9/08

   
   
런던 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직항이 아닌 경유 티켓을 끊었다. 직항과 경유는 비용이 4,50만원 정도 차이가 나서 나름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부했는데. 지나서 보니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아무튼 내가 선택한 항공사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이었다. 기름이 펑펑 나서 달러를 태워 비행기를 날린다는 풍문이 도는 항공사답게 비행기도 크고 음식도 맛있고 승무원도 근사했다. 
   
   
예정대로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서 중간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 도착해 몇 시간 때운 후 런던으로 출발하기 위해 보딩을 시작할 때 그 일이 일어났다. 두바이를 경유해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편에는 한국 사람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일까. 보딩을 시작했을 때 항공사에서 비행기 좌석별로 순서를 정해서 부르는데 영어와 아랍어로만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제일 먼저 탑승하는 승객은 퍼스트클래스. 그 다음은 비즈니스 클래스. 그다음은 어린이 동반 승객들과 활동이 불편한 사람들. 이어서 좌석 구역별로 A부터 F까지 탑승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A부터 F까지는 알파벳 순서대로가 아니라 항공사에서 정한 순서대로 타라고 했다. 그러니 자기 차례가 언제 올 것인지 주의 깊게 들어야 했다. 
   
   
   
마침 내가 앉는 구역이 맨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하는 곳이라 나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인도에서 왔다는 할머니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어떤 가족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빠와 엄마와 아들 둘이었는데 방학을 맞아 런던 여행을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가족은 아빠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는데. 문제는 아빠가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퍼스트 클래스 승객부터 입장을 시작해달라는 항공사의 방송에 따라 승객들이 움직였을 때 식구들을 이끌고 거기에 줄을 선 것이다. 
   
   
나는 무심코 그 가족을 보고 있다가 승무원들이 조금 있다 타라고 그 가족을 돌려보내는 모습을 봤다. 그때 동양인으로 보이던 가족이 한국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박산호
박산호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우리 사회의 좀 특별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일,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겠습니다.
25
팔로워 599
팔로잉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