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인
안정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삶
2023/12/07
  2021년 봄, 영국 바스(Bath)로 주말여행을 떠났다. 모처럼 날씨가 좋은 토요일이라 길거리엔 사람들로 꽉꽉 찼더랬다.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대한 사람들 없는 조용한 곳으로 피해 다니다 늦은 오후 알렉산드라 공원에 올랐다. 언덕 꼭대기까지 헉헉대며 올라가니 명성대로 바스 시내가 시원하게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하려는 찰나에 냅다 뛰는 아이들. 신나게 달려가는 곳을 보니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또 놀이터람.’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저만치 가버린 녀석들을 좇아 남편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라, 이 놀이터 뭔가 다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네 종류의 각기 다른 그네. 일반적인 모양의 납작 그네와 그 옆에 부모와 아기가 마주 보며 함께 탈 수 있는 그네, 누워서 탈 수 있는 원형 그네, 그리고 휠체어 그대로 올라탈 수 있는 커다란 사각형 그네였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마지막 그네. 휠체어를 타고도 그네를 탈 수 있다고? 그런 그네는 들어본 적도 아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 Ability Swing(굳이 옮기자면 ‘만능 그네’쯤 되려나)이라고 적힌 그네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문장.    

모든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다(Every child deserves the right to play)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어떤 이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놀이터라니 얼마나 근사한지. 놀이터에서 감동받기는 또 처음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어지럽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인 회전무대, 일명 뺑뺑이도 좀 다르게 생겼다. 서서 탈 수 있는 자리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 유아들이 탈 수 있는 자리로 다양하게 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트램펄린도 휠체어를 타는 어린이 포함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이 놀이터는 말로만 듣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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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봅니다. 삶과 앎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돌보는 기예로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독립출판물 『영국탐구생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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