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몰카, 몰카의 쓸모 - 사랑받는 K남편으로 살기는 어려워

루시아
루시아 · 전자책 <나를 살게 하는> 출간
2024/03/15

쉬는 날이 더 바쁜 남편.
평소엔 늘 내가 아이들 픽업을 도맡아 했으니 비번일 때는 자신이 픽업을 하겠다 해서 그래준다면 사양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만 받을 게 아니라 맘껏 누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차라리 출근하는 게 홀가분할 것 같은 남편의 빡빡한 하루 일정이 되어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라던 리쌍의 노래처럼 휴무가 휴무가 아닌 남편의 휴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번인 남편의 오늘 하루 일정을 약간 설명해 보자면 08시 30분에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기, 10시에 왕복 1시간 30분 거리의 어머님댁 방문하여 직접 담그신 고추장 및 반찬 받아오기, 13시 30분에 감기 기운 살짝 도는 막둥이 픽업하여 이비인후과 들렀다가 센터에 데려다 주기, 15시 30분에 코 찡찡 증상 다 나았는지 딸내미 픽업하여 역시 이비인후과 진료 후 센터에 데려다 주기, 16시에 마누라랑 코스트코에 가서 장보기, 집에 와서 장 봐온 식자재 정리하기, 18시 30분에 센터에 가서 아이들 픽업해 오기까지가 오늘의 스케줄이다.
만일 나였다면 '이런 스케줄이라면 휴무 반납이오!' 외칠 것 같은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빡빡하고 촘촘함에 몸서리를 쳤을 것 같다. 하루에 여섯 탕을 뛰어야 한다니 숨이 막혀온다. 대한민국의 사랑받는 K남편으로 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 일정이 두 개만 있어도 괜히 정신없는 나는 남편의 일정을 다시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그려보자니 왠지 비서가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다.

비서 따위 필요 없다는 듯(하긴 비서가 있다면 그 모든 일은 비서에게 시켰겠지) 남편은 실행에 옮기고 말겠다는 각오와 비장한 다짐의 표정을 지은 채 카트를 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보~~~!"

으이그. 이냥반 뭘 또 빠뜨렸대?

"왜, 뭐? 핸드폰? 차키? 어떤 거, 뭐!"

그랬더니

"얼른 나와서 남편한테 마중인사를 해야지~"
라며 씨익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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