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6/07

   
   
   
사람들은 종종 오해한다. 내 직업이 영어 번역가라니 원어민과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으리라고. 안타깝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번역가는 글을 다루는 사람이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영어문장을 보는 나나 원서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을 유려하게 한국어로 옮기는 동료 번역가들도 그만큼 유창하고 능숙하게 영어로 말하기란 쉽지 않다. 말과 글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어민을 만났을 때 영어 사용을 꺼리거나 부끄러워하는 동료 번역가도 자주 봤다. 
   
   
내가 그나마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고, 30대에는 통역 아르바이트를 뛸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에서 3년 정도 살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연습을 3년 동안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허나 언어란 계속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녹이 스는 운동이나 악기 연주와 같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 고 말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처럼 아무리 예전에 유창하게 말했더라도 안 쓰면 잊어버리는 것이 외국어다. 
   
   
최근에 나는 갑자기 영어로 일을 할 기회가 늘어나서 맹렬하게 회화 연습 중인데, 그러다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 그러니까 토익 700점 이상 맞아봤고, 해외여행도 종종 다녀서 돈 쓰는 영어는 자신 있고(돈 쓰는 영어와 돈 버는 영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넷플릭스와 각종 OTT에 나오는 영드와 미드를 섭렵해 나름 영어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것 같은데. 원어민을 만나면 하우 아유, 파인 땡 큐, 앤드 유? 이후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증상은 왜 생기는 건지 생각해봤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막힘없이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영어도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라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평소에 영어문장을 읽고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고, 넷플릿스 영드나 미드에서 영어 자막이 나오면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영어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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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좀 특별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일,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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