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 붙인 세계

서리
서리 · 읽고 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
2024/05/11
   2017년 여름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독서의 세계를 만났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출연한 <어쩌다 어른>이라는 시사/교양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다른 어떤 이유나 목적보다도 오로지 재미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책을 읽는 방법과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소개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빨간 안경테 너머로 빛나는 눈빛과 약간 격앙된 어조,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들뜬 표정은 책에 대한 애정이 한치의 꾸밈이 없는 진심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독서는 개학 전날까지 미루고 또 미뤄둔 여름방학 과제 같은 거였다. 그가 말한 ‘책 읽는 재미’를 나도 알고 싶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게 여가란 곧 책 읽기를 의미했다. 책을 읽고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충격과 쾌감—나에게 독서는 재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재미라는 말로는 전부 표현될 수 없는 감정들도 많기에, 여기서 나는 그 감정을 뭉뚱그려 “충격과 쾌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표현할 언어는 늘 그렇듯이 부족하다.—을 맛본 뒤로 나는 계속 다른 책을, 새로운 자극을 안겨 줄 책을 원했다.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책 이름을 검색하자 내가 찾는 책 이름 해시태그를 단 피드가 쏟아졌다. 여기에 내가 찾던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내가 찾은 피드들은 모두 ‘#북스타그램’ 혹은 ‘#책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북스타그램의 세계는 끝없이 황홀하게 읽고 싶어지는 다음 책을 소개해주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면,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 2013)를 읽으며 내가 서구 열강에 대해 느끼는 미묘한 인종적 열등감을 새로운 관점—세계 지리와 문명 발달사가 그토록 깊은 관련이 있다니 흥미로웠다!—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을 읽으며 여러 질병의 원인이 결코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거기에는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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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웁니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부글거리는 생각들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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