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법

alookso콘텐츠
2023/12/19
최장순 엘레멘트 컴퍼니 대표. alookso 우현범


언어학, 신문사, 브랜드 네이머

최장순 대표는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동기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들뢰즈, 칸트 등에 관해 토론할 정도로 배움에 진심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교수신문사에서 퇴사한 후 언어학 전공자를 뽑는 곳이면 어디든 지원했다. 그중 하나가 브랜드 앤 컴퍼니였다. 그는 네이밍 파트에서 브랜드 기획 커리어를 시작했다.

  • “내 방식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 있죠” 최장순 대표
브랜드 이름을 지어주는 네이밍 파트에서 기획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언어학과 철학의 개념을 이해하면 기업의 에센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발표 때 제가 플라톤 같은 철학자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당시 업계에서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는데 제가 너무 설익게 이야기한 것이죠. 그러니 선배들 눈에는 제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고요.

입사한 지 4개월쯤 됐을 때 한 선배가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일할 거면 그냥 대학원을 가라고요. 제가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더니 ‘열심히 하는데도 이 정도 수준인 게 문제’라고 말했어요. 빈정대듯 말한 것은 아니었어요. 소질이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진심 어린 충고였죠.

그때 생각했어요. 내 방식대로 해야겠다고. 그때부터 두 가지 노력을 했어요. 먼저 설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가 쓰는 언어를 고급화하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고, PT를 잘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책도 많이 봤어요. 이어서 파워포인트 작성법을 다양하게 연구했어요.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구할 수 있는 PPT 파일은 모두 구해서 공부했죠. 단축키를 모두 외어서 1년에 300개 정도의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고요. 회사에서는 당연히 제일 늦게 퇴근했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오직 일만 했어요. 

기본적인 스킬 셋을 갖추고 발표도 잘하게 되니 선배들이 저를 무시하지 않았어요. 제 언어가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죠. 연차가 낮았음에도 클라이언트들이 저를 자주 찾기 시작했고, 빨리 PM으로 올라갈 수 있었어요.
최장순 대표의 사무실. alookso 우현범


2011년, 인천공항 서비스에 철학을 심다

인문학을 무기로 업계에서 인정받은 최장순 대표는 점차 국내 유수 브랜드의 기획을 맡기 시작했다. 부산 해운대의 엘시티를 네이밍했고, 메이드 인 광장 프로젝트를 기획해 광장시장이 지닌 상생의 가치를 부각했다. 2011년에는 인천공항 서비스가 6년 연속 1위를 달성한 비결을 ’마음씀‘으로 정의해 인천공항 서비스에 철학을 심었다.

  • “이해당사자 간의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에 주목했습니다” 최장순 대표
인천공항이 1위를 유지한 비결을 ‘시간 단축’으로 봤어요. 2011년 CNN 기사에 따르면 여행객이 공항에서 제일 불편해하는 것이 바로 이유 없이 오래 기다리는 것이었어요. 당시 인천공항은 서비스 개선 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세계에서 출입국이 가장 빠른 공항으로 거듭났었죠.

그때 제가 조립한 퍼즐은 이렇습니다. 공항에서의 동선 변화에 주목했어요. 동선은 기호학적으로 볼 때 머무름과 움직임의 이항 대립으로 움직이잖아요. 타자에게 머무르는 태도를 머무름으로, 타자를 향하는 태도를 움직임으로 해석했어요. 인천공항 서비스를 하루 돌리려면 525개의 이해관계자가 필요했어요. 정부 기관, 민간 기업, NGO 등의 이해관계자가 모두 오케스트레이션이 됐을 때 서비스가 잘되는 것이죠. 그 모습에서 타자에 머무르는 배려의 정신을 '마음'이라고 해석했어요. 움직임의 코드는 행위 동사인 '씀'으로 해석했고, 합쳐서 '마음씀'이라는 컨셉을 도출했어요. 

당시 인천 공항에서는 해외공항 컨설팅까지 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여행객이 전 세계를 거쳐가기 때문에 세계 곳곳의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경쟁 공항에 컨설팅도 했죠. 해외 여행객이 한국에 왔을 때 원활한 소통을 돕기 위해서 운수 업자들에게 무료로 영어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런 건 완전 진보적인 서비스죠. 사실 기업들은 이런 걸 잘 안해요. 이익은 못 내면서 돈만 드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게 다 '마음씀'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공기업이니까 가능한 것도 없잖아 있지만, 선제적으로 관찰해서 개선할 수 있는 것을 다 촘촘하게 설계해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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