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일부. 잘 가요, 내가 사랑한 사람.

화
· 봄의 정원으로 오라.
2023/06/21
 
돌아가시던 날. 병원으로 향하면서.
당신의 안녕을 빌면서 글을 썼던 게 꼭 어제 같다.
그래도 1년은 더 같이 계실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빛 좋고 선한 날에, 단정한 모습으로.
당신처럼 그리도 곱게 가셨는지.


  지난 5월 23일, 햇빛이 온화하던 아침.

 대학의 시험 기간이라 이른 아침부터 강의를 듣고 있었다. 헌법 강의가 끝나기 10분 전 즈음, 오빠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이 전날, 분명 여자친구와 경주로 여행을 간다고 했었는데. 혹여 사고가 났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러나 강의가 끝나기까진 얼마 남지 않았고, 한창 중요한 흐름이었기에 문자로 남겨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전화가 꺼지고 까맣게 점멸한 휴대폰 화면으로, 카카오톡 가족 채팅방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첫 번째는 실감이 안 난다, 였고. 다음은 현실부정이었고. 그다음은 공허와 상실과 허탈감. 아, 이제 볼 수 없구나. 보고 싶다. 그런데 볼 수가 없네. 

 멍하게 휴대폰만 바라봤다. 뇌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화면의 글자는 그저 글자일 뿐이라고 인식되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도, 아무런 감회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나치게 무감하고 건조한 기분. 그리고 감상. 지금 이 자리에서 감정을 터뜨릴 수 없다는, 어떤 필사적인 본능이 있었나보다. 강의는 일찍 마쳤고, 나는 황급히 일어났다. 연달아 강의가 있는데 어딜 가냐는 동기들의 눈길. 

 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서. 지금 가봐야할 것 같아. 먼저 갈게.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급한 발걸음으로 나왔다. 나와서 화장실로 들어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누가봐도 지나치게 울어 다 잠긴 목소리였다. 아. 오빠는 봤구나. 임종을. 말하지 않아도 알 듯했다. 오빠는 아버지와 자기가 병원에 전화해서, 운구차가 오고 있으니 너는 어머니와 천천히 오라고 말을 전했다. 

 어머니께는 전화했어?
 응.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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