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도구, 맨홀

김영준
김영준 · 도시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2021/10/19
2017년 서울시가 발간한 "2016 서울시 맨홀 현황 통계 보고"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약 60만 개의 맨홀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2017년 기준 서울시내에 존재하는 건축물의 수가 약 69만 동이니, 서울 길거리에서 눈에 들어오는 빌딩의 숫자 만큼이나 우리의 발 밑에 맨홀이 존재하는 셈이지요. 맨홀은 그 밑에 부설된 전기, 가스, 수도, 통신 시설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통로이자 창구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지표면 위에 존재하는 건축물들로 대표되는 '지상 문명'과, 이를 지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인 '지하 문명'을 이어주는 접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시내에 근대적인 수도망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이었습니다. 수도가 들어가는 곳마다 당연히 맨홀이 놓였고 그 뒤를 전기, 가스, 통신과 같은 인프라가 이었습니다. 서울의 시가지가 수 십년에 걸쳐 확장됨에 따라 맨홀들도 함께 세력을 넓혀갔고, 자연스럽게 구시가지의 오래된 맨홀들은 어느덧 보잘 것 없는 철판 조각을 넘어서 지난 세기의 도시 발달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로 점차 변모해 갔습니다. 

50년 전 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1910-30년대에 지어진 예스러운 근대건축물을 '문화재'로서 보전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지금처럼 퍼져있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등록문화재 제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고, 철거 위기 소식이 들려오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보존 운동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맨홀의 처지가 바로 지난 세기의 근대건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신기한 문양을 가진 길바닥의 '레어템'으로서 대우를 받는 맨홀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도시의 근현대를 담은 산업유산으로서 더 의미있는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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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도쿄에서 살고 있습니다. instagram @journey.to.moder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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