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속 단골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이 떠오르네요. 저도 예전에는 그냥 생각없이 웃었어요. 그런데 이 게임 자체가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글을 보게된 이후로는 마냥 재밌지만은 않더라구요. 안들리는게,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한다는게, 그 과정에서 다른 단어를 말하는게, 누군가에게 전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니깐요.
개인적으로, 특정 대상이나 집단을 비하하는 개그를 참 싫어합니다. 굳이? 라는 생각이 첫번째고, 그 개그를 듣고 웃질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라요. 다만, 그런 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
그래서 개그 프로가 많이 없어지나봅니다.
개그맨 하시는분들은 머리도 좋아야하지만,스트래스도 많고 힘든작업일겁니다.
언젠가 방송국 을 갔었는데 개그맨 대기실을 지나가던중
화면에서 즐겁게하던 그런모습이 아니고,고뇌에찬 모습과 담배 를 많이 피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것은 소수의 아픔과 상처도 동반해야 한다는거죠.
열명중 9명의 환호성 보다 한사람의 고요한 외침을 외면 하면 않되는것이죠.
그래서 개그 프로가 많이 없어지나봅니다.
개그맨 하시는분들은 머리도 좋아야하지만,스트래스도 많고 힘든작업일겁니다.
언젠가 방송국 을 갔었는데 개그맨 대기실을 지나가던중
화면에서 즐겁게하던 그런모습이 아니고,고뇌에찬 모습과 담배 를 많이 피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것은 소수의 아픔과 상처도 동반해야 한다는거죠.
열명중 9명의 환호성 보다 한사람의 고요한 외침을 외면 하면 않되는것이죠.
전반적인 공감능력의 부재라고 봅니다
시청자가 보면서 불편해한다면 그들은 검수를 안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갈수록 인권을 강조하는 세상으로 진화할텐데
시대 흐름에 역행하네요. 굳이 그런 소재를 쓰지 않더라도
찾을 수 있는 재료가 만을텐데 조금 더 노력해야겠네요.
그래서 개그 프로가 많이 없어지나봅니다.
개그맨 하시는분들은 머리도 좋아야하지만,스트래스도 많고 힘든작업일겁니다.
언젠가 방송국 을 갔었는데 개그맨 대기실을 지나가던중
화면에서 즐겁게하던 그런모습이 아니고,고뇌에찬 모습과 담배 를 많이 피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것은 소수의 아픔과 상처도 동반해야 한다는거죠.
열명중 9명의 환호성 보다 한사람의 고요한 외침을 외면 하면 않되는것이죠.
글을 보고 나니, 왜 그동안 인지를 하지못하고있었을까.. 아차! 싶었어요.
이런 인식 하나둘이 모여, 개그 트렌드도 소외된 집단 없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네요.
아무 생각없이 웃으면서 봤덧 제 자신을 돌아보게되네요.
반성 하고 갑니다.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글입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제 자신한테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누군가는 농담이였고 웃길려고 한 말과 행동이 그 당사자는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을겁니다 마음에 상처를주면서까지는 자신의 이득을 보려하지않았으면합니다
그저 티비 보면서 아무생각 없이 '웃기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많은 사람들이 한번 쯤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군요.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아프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요
친구들끼리 너무 편하게 욕히고 험하게 애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있는 것 같아요
내 가까운 옆에도
고요속외침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감사드려요.
그래서 개그 프로가 많이 없어지나봅니다.
개그맨 하시는분들은 머리도 좋아야하지만,스트래스도 많고 힘든작업일겁니다.
언젠가 방송국 을 갔었는데 개그맨 대기실을 지나가던중
화면에서 즐겁게하던 그런모습이 아니고,고뇌에찬 모습과 담배 를 많이 피우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것은 소수의 아픔과 상처도 동반해야 한다는거죠.
열명중 9명의 환호성 보다 한사람의 고요한 외침을 외면 하면 않되는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