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을 구제한다고 풍요가 사라지지 않는다
2023/10/04
빈곤을 구제한다고 풍요가 사라지지 않는다 - 존 갤브레이스, <풍요한 사회>
‘생산의 기득권’이 또 다시 합리화 되는 근거는 이른바 ‘소비자 수요’가 끊임없이 창출된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생산증대가 굶주린 사람에게 식량을, 추운 사람에게 의복을,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제공하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오늘날 생산증대란 더 우아한 고급 자동차와 색다른 음식, 멋진 옷, 세련된 오락 등 한마디로 감각적이고 부도덕하고 파괴적인 현대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생산을 옹호하는 경제이론은 통념에서 난공불락의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그리고 놀라울 만큼 아무런 도전도 받고 있지 않는데), 이는 대단히 비논리적이며 저속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천만한 것이다.”(p.149)
왜냐하면, 이 소비자 욕구라는 것이 결코 소비자 개인의 소비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에 의해서 ‘부추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소비한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잘 보라. 과연 이것이 진정 ‘자유로운가?’ 자의적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타의에 의해 부추겨진 행위인가? 백화점을 쇼핑할 때 항상 생각했던 것보다 매번 ‘불필요’하게 많은 소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최성욱 어느 나라고 비슷한 면이 있겠지만 정권의 차이에 따라 정책의 연속성이 너무 많이 훼손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퍼주었다거나 줄였다고 해도 실감으로 느끼는 부분이 적은 사람에게는 둘 모두가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희한한게 보수계열이 집귄할때는 북한에 퍼주었다는 말은 안들리고 법인,상속,재산세 낮추자는 말이 많이 들리고 진보일때는 맨날 퍼주었다고 하는데
복지로 일자리 늘려주면 좋겠네요
@최성욱 어느 나라고 비슷한 면이 있겠지만 정권의 차이에 따라 정책의 연속성이 너무 많이 훼손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퍼주었다거나 줄였다고 해도 실감으로 느끼는 부분이 적은 사람에게는 둘 모두가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희한한게 보수계열이 집귄할때는 북한에 퍼주었다는 말은 안들리고 법인,상속,재산세 낮추자는 말이 많이 들리고 진보일때는 맨날 퍼주었다고 하는데
복지로 일자리 늘려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