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11)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09/21
유사역사가들은 세조가 우리나라에 비밀히 전해오는 역사책을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를 종종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종 때 이맥이라는 사람이 찬수관으로 내각의 비서(秘書)를 읽고 "태백일사"를 썼다는 등의 헛소리를 합니다.

세조가 내린 구서령(책을 구한다는 명령)은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조 어진 (문화재청)

이 구서령이라는 건 세조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세조의 아들 예종도 했었죠. 그런데 세조와 예종의 구서령 목록은 조금 다릅니다.

세조가 구했던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동천록>, <마슬록>, <도선 한참도기>, <통천록>은 예종 때는 빠졌습니다. 대신 한 권의 책은 예종만 구한 책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예종이 구하고자 했던 <명경수(明鏡數)>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명경수>는 '거울처럼 밝게 보는 운수' 정도로 풀 수 있는 제목입니다. 즉 점복 책인 거죠. 사실 구서령에 등장하는 책들 중엔 역사책으로 볼 것이 없습니다. 흔히 한글로 보면 뭔가 엄청난 책일 것처럼 보이는 <고조선비사>만 해도 秘史(비사), 즉 비밀의 역사가 아니라 秘詞(비사)입니다. 詞는 시의 일종이고, 넓게 보아도 글을 뜻하는 문자입니다. 즉 고조선에서 내려오는 비밀스런 시문 정도의 뜻이죠. 즉 이 책들은 철저히 '도참서(圖讖書)' 즉 예언서들이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명경수> 이야기로 돌아가죠. <명경수>는 성종 때 구서령에도 등장합니다. 이 책은 꽤나 유명했던 책이었습니다.

세조 13년(1467)에 온양군수 김한생이 책을 하나 바쳤는데 그 이름은 <복명서(卜命書)>였습니다. 세조가 서거정에게 어떤 책인지 알아보게 했는데 서거정이 "이것은 <명경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조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것을 아는가?"
"...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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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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