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가장 와닿았던 질문은 '불평등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입니다. 불평등 때문에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불평등이 없어진다면 이런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해서 이 질문이 제일 와닿았네요.
우선 불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가지 불평등이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정치인의 눈치를 보면서 그 정치인의 아들이나 딸에게 무언가 혜택을 주는 거요.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누군가가 밀려나개 되는 일, 기회의 불평등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기회의 불평등을 없앤다면 대부분의 불평등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의 불평등을 없앨 방법...
'기회의 불평등'이란 말을 좀 더 폭 넓게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단지 누군가의 특혜 뿐 아니라, 그저 교육의 기회를 더 얻는 것, 어렸을 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도 기회의 불평등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도 '공정이라는 착각'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입학을 시킬 때 어느 정도 성적만 되면 차라리 그 중에 제비뽑기 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라고 하면서요.
불평등을 없앨 자유. 라는 제목이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작성자분께서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현실은 그러한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죠. 혹은 그러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그러한 자유를 잃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취업 면에서 말고도 저희 사회 안에서도 만연합니다. 저는 작성자분이 써주는 기회의 불평등을 발판 삼아 사회에 발생하지만, 모두가 모르는 불평등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중에 강화길 작가님의 화이트 호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한 챕터인 [음복]이라는 챕터는 아직도 남아있는 제사라는 문화에 만연한 성차별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공인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누이, 제사를 강요하는 시어머니. 흔히 이 책에서의 빌런은 이 두 인물을 꼽지만, 결국 이야기의 말단에 가서야 누가 진정한 빌런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가정의 폐해를 그 짧은 시간에 경험하는 사이, 누군가는 그것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주인공의 남편입니다.
‘무지가 곧 권력이다.’
이상해 보이는 문장이죠? 아는 것이 힘 아닌가?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무지가 권력입니다. 주인공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짐, 가정 사이 보이지 않는 계급, 당연시되는 차별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일이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그러한 문제에서 소외되고,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받았는데도 그 기득권층은 권력의 유무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책을 읽고 저는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지, 모두가 권력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제가 지금 모르고 사는 무언가도 내게 권력이겠구나. 다시 체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곧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저는 그것의 다른 증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작가님의 낭독회를 여셨는데, 그곳의 여학생과 남학생의 비율이 반반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낭독회가 끝난 후 여학생들과 일부 남학생들이 글에 관한 질문을 하는 도중 작가님은 충격적인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남편이 모르던 게 뭔데요?”
이들의 독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은 무지의 권력을 너무 잘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고통받는 이유도 되물림 되는 이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다시 되돌아서 무지가 곧 권력이라면 이러한 불평등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불평등이라는 사실도, 고쳐야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실정에서는 어떻게 불평등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저는 다시 질문해 봅니다. 불평등을 불평등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사람들, 그러한 자유조차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작성자분의 글에서 조금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를 주장했던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가 자칫, 감동이다.에서 끝날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전에는 흑인이 인권이 없는 것이 당연한 세대였습니다. 즉, 그 이야기가 표면 위에 떠올랐다.는 자체가 해결의 시작점인 거죠.
현재 많은 문제가 수면 위에 올라왔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성차별 문제와 작성자분이 적어주신 기회의 문제를 포함해서요. 저는 아예 문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현재 불평등의 노출은 곧 불평등을 해소할 기회가 왔다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이제는 불평등을 이겨낼 수 있고, 우리 모두의 노력과 화합만 있으면 되니까요.
모두가 자유를 갖고 불평등을 말하고,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불합리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기회의 불평등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노력하면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도 바로 기회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한 사람은 자본, 환경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수많은 기회를 얻지만 누군가는 기회가 매우 부족하거나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보셨다시피 전태일 열사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어 노동 환경 개선에 성과를 보여주셨듯, 어쩌면 기회를 만드는 개인에게 사회가 더 큰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기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의 불평등'이란 말을 좀 더 폭 넓게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단지 누군가의 특혜 뿐 아니라, 그저 교육의 기회를 더 얻는 것, 어렸을 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도 기회의 불평등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도 '공정이라는 착각'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입학을 시킬 때 어느 정도 성적만 되면 차라리 그 중에 제비뽑기 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라고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