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의 정치경제학과 경쟁 없는 성취 - 우광훈의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4/04/01
우광훈,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문학동네, 2017.

탕진의 정치경제학과 게임의 법칙
   
인형뽑기를 사행성 게임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도박이 일상의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회적 염려를 반영한다. 사회 전반에 도박이 늘어나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만연하는 까닭은 정당한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인식이 저변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더구나 실패를 사회적 부조로 해결하기보다 개인의 책임만을 가혹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높고 견고한 진입장벽 때문에 계층상승 욕망은 거세되고, ‘탕진’과 ‘일탈’만이 현실의 취미로 남게 됐다. 각종 도박 및 사행산업이 번성하고 있는 이유는 경제적 불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사회적 모순의 구조적 결과인 셈이다.
   
““뽑을 수 있겠어?” 내가 상품 오른쪽에 꽂힌 아크릴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어. “나 못 믿냐?” “아크릴 달린 건 한 번도 안 해 봤다니까 그러지.” “그럼 포기해?” 아빠가 되물었어. 포기? 솔직히 뽑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어. 분명 깔끔하게 포기하고 돌아서는 게 맞는데 좀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때였어.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 울려 퍼졌어. 드리어 아빠가 뽑기 기계에 돈을 넣을 거야. 그것도 자그마치 만 원이란 거금을.”
   
위 인용문은 제7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우광훈의 <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의 한 단락이다. 인형뽑기가 유행하면서 문학 작품에도 인형뽑기가 중요 소재로 차용된 사례이다. 소설은 질병으로 인해 실직한 가장이 인형뽑기의 달인 “뽑기왕”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고단한 인생을 인형뽑기라는 알레고리로 치환한 우화적인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많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뽑기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실패와 좌절...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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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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