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 이씨의 본고장 전주에서 여성 '가계'를 말한 이유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5/29
<가계>는 19분짜리 짧은 단편이다. 채 20분이 되지 않는 단편에서 허투루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해도 좋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달리 의미 깊은 장면을 꼽자면 역시 처음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첫 인상을 결정하고, 그로부터 어떤 관객을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 볼 의지를 다진다. 반면 처음이 별로인 영화치고 건질 만한 구석이 있는 작품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창작자라면 관객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공들여 찍게 마련이다. 첫 장면은 이후 러닝타임 동안 표현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적어도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주어진 여유가 많지 않은 단편이라면, 첫 장면이 갖는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가계>의 첫 장면은 함께 상영된 다섯 작품 가운데 단연 인상적이다. 가녀린 여성, 흠집 하나 없는 뒷모습이 강바람을 맞고 서 있다. 하늘거리는 머리카락과 가볍게 흔들리는 몸을 그대로 잡아내며 카메라는 한참이나 그녀의 뒤만 보고 섰다. 여성의 나신, 그 자체로 배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카메라는 차츰 허리춤을 확대하다 이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 전주국제영화제 스틸컷 ⓒ JIFF

수술 보호자가 필요해 재회한 부녀

영화는 여자(이영아 분)의 이야기다. 서른쯤은 넘겨 보이는 여자가 꽤나 오랜 만에 제 아버지를 찾아간다. 이유는 수술을 하는데 보호자가 필요해서다. 따로 짝을 만나지 못하였고 같이 사는 가족도 없었던지라 시골에 홀로 있는 아버지를 찾은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듯 보이는 부녀 사이가 한눈에 보기에도 어색한데, 아버지는 그녀의 말이 한 마디 끝날 때마다 연신 담배를 찾아 태운다.

여자는 난소에 종기가 나 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 종기가 얼마나 큰지를 묻는 아버지의 물음에 여자는 10cm나 된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10cm 짜리 종기, 아버지는 어쩌면 아이를 낳을 수 없으리라고 제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여자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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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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