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 범죄"에 대한 사회학적 시대 진단

채희태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교육사회학도
2023/09/07
본 글은 <교육언론 창>에 연재한 마지막 칼럼임을 밝힙니다.

고전적으로 철학은 ‘존재’에 관한 질문과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 그리고 선과 악을 대하는 태도인 ‘가치’를 다룬다. 철학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는 딱 그 정도까지만 알고 있다. 사실 철학(philosophy)은 말 그대로 "지식(sophia)“을 "사랑(philo)”하기만 하면 되는 학문이다. 그런데 왜, 언제부터 철학을 어렵게 느끼게 되었을까? 갈수록 현실과 멀어지고 있는 철학을 필자의 어설픈 상식을 대입해 설명해 보겠다. 철학을 구성하는 존재론(Metaphysics), 인식론(Epistemology), 가치론(Ethics)은 모두 철학이라는 애매하고도 모호한 학문의 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의 분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천재 사상가들에 의해 차고, 넘치도록 연구되어 왔다. 문제는 특정할 수 없는 철학의 분모다.
<출처: 필자 구성>
철학이 어렵고,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모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수렵과 채집을 했던 원시시대와 비로소 생산노동이 시작되었던 농경시대, 그리고 노동이 이윤을 넘어 다양한 이익으로 분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시대의 철학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대라고 하는 분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저명한 과학 팟캐스트 중 하나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듣던 중, 한 과학자가 “인류는 우주의 비밀을 고작 4%* 정도 이해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한껏 진보하고 있는 과학에 비해 4%는 지나치게 겸손한 게 아닐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저 4%를 매우 오만한 숫자라고 생각한다. 4%라는 숫자는 100%를 특정할 수 있을 때만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우주의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2018년 타계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또 설명할 수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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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사회 현상의 본질을 넘어 그 이면에 주목하고 싶은 兩是論者.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ZDNET 코리아에 칼럼 "IT는 포스트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연재. 공주대학교 평생교육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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