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백신'과 음모론의 시작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21
완벽하게 정복된 질병
'질병을 정복했다'는 문장은 무슨 의미일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정복'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해당 질병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아내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정복'이면 현대의학이 정복한 질병은 아주 많다. 그러나 해당 질병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지구에서 뿌리뽑는 것이 '정복'이면 안타깝게도 인류가 정복한 질병은 거의 없다. 아주 간단한 상처감염만 봐도 항생제 투여로 환자 대부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나 모든 세균을 뿌리뽑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독감과 감기, 바이러스성 간염, 말라리아, 폐렴, 뇌막염, 파상풍, 모두 적절한 치료법이 있어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나 해당 질병을 완전히 뿌리뽑아 사라지게 만들기는 어렵다. 

다만 딱 한 가지, 천연두(small pox)는 예외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무시무시한 재앙이나 유일하게 정복한 질병, 완전히 뿌리뽑아 이제는 찾기 힘든 질병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도 천연두란 단어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껏해야 '역사책에 종종 등장하는 심각한 질병'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천연두는 아주 심각한 재앙에 해당했다. 몇몇 학자는 중세와 르네상스 무렵, 해마다 발생하는 사망의 10%는 원인이 천연두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무렵 천연두의 치사율은 20-60%에 이르렀고 18세기 유럽에서 연간 400,000명이 천연두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며 살아남은 사람도 많은 수가 시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천연두는 어떤 질병이며 인류는 어떻게 해당 질병을 '정복'했을까?

동방에서 온 예방법
천연두는 Orthopoxvirus에 속하는 Variola virus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일단 감염되면 발열, 오한, 근육통, 구토 같은 증상부터 나타난다. 이런 초기 증상은 개성이 명확하지 않아 감기와 독감 같은 다른 질환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며칠 내에 구강을 중심으로 점막에 작고 붉은 점이 나타나고 곧 피부에도 발진이 시작한다. 피부의 발...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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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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