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인도자,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시인을 애도하며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5/22
책모임을 가진 지 어언 십 년이다. 모임 횟수로는 삼백 차례를 훌쩍 넘어섰다. 경험은 인간을 변화시키게 마련, 책모임 또한 어떤 방향으로든 나를 변화시킨 게 사실이다.

수없이 많은 깨달음 가운데 한 가지, 모두에게 옳은 책은 없다. 걸작은 반드시 통한다는 어릴 적의 믿음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수없이 겪었다. 내게는 졸작조차 누군가에게는 인생책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내게는 졸작에 그치는 어느 책으로부터 누구는 땅을 짚고 일어설 용기를, 오만을 경계하는 배움을, 해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누가 있어 그를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답을 보다 수월케 찾는 법을 안내할 수는 있는 일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 이야기한 것이 루이 아라공이었던가. 그의 말이 옳다. 독서에도 선생님이 있다면 그는 그저 희망을 제시하는 이일 테다.

한국 시 세계로 이끈 인도자가 떠나다

시는 죽어가는 장르라고들 한다. 한때 문학의 정점이라 불리며 글 쓰고 글 읽는 이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장르가 이제는 읽는 이 없는 천덕꾸러기쯤으로 남겨져 버렸다. 언제라고 시가 잘 나가던 때가 있었더냐 하는 이에게도 명백히 추락하는 시분야 도서 판매량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일깨운다.

출판계가 죽고 있다지만, 그중 문학이 더 빨리 죽고, 시는 진작에 죽어 있는지 아직은 살아 있는지 알기도 어려운 지경이 아닐까.

한 장르의 쇠퇴며 소멸이 그저 그 장르만의 죽음으로 그칠 리 없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미래를, 약속을, 다음을 기약하는 수많은 개념을 탄생시켰듯이, 시의 죽음은 수많은 시어들의 소멸을, 시로부터 피어난 마음과 가치들의 패퇴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불러온 좋은 것을 지키려는 이들이 시를 퍼뜨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내게 좋은 것이 어디 남에게도 좋은 것인가. 내게는 더없이 좋은 시가 남에게는 난해하고 지루한 글 덩어리, 혹은 그조차 되지 못한 파편들일지 모를 일이다.

나와 남 사이에 놓인 턱을 낮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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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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