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의 계보 ⑦ : 서구만화의 영향을 받은 기타자와 라쿠텐의 등장

박인하
박인하 인증된 계정 · 만화평론가, 만화연구자
2024/04/04
글이 오랜만에 시작되어서 다시 살펴보자. '망가의 계보 ④'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도 막부는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이 군함(쿠로후네,黒船, 흑선)을 끌고 와 무력 시위를 한 이후 오랜 쇄국 정책을 끝냈다. 물론 쇄국 정책이라고 서구 문물이 전혀 수입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쇄국 정책 기간 중에는 1634년부터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와 교역이 가능했지만 당연히 한정적이었다. 1854년 미일화친조약 체결 이후 서구의 우월한 힘을 경험한 막부는 물론 지방의 번에서도 서양을 배우자는 '양학' 붐이 일어났다. 양학교가 설립되고, 정부는 국비유학생을 파견했다. 심지어 조슈와 사쓰마 다이묘들은 막부 몰래 번 차원에서 유학생을 파견했다. 그리고 이들 유학생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 건설의 중심이 된다. 
 
1867-1868년 지방 번의 하급무사들이 중심이 된 쿠데타로 막부 정권 무너졌다. 메이지 정권 수립 이후후 쿠데타 주축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소위 '한바쓰(藩閥, 번벌)' 정치에 항의해 헌법제정, 의회수립, 언론과 집회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민권운동이 벌어졌다. 1874년 민선의원 설립 건의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정당(자유당, 개진당)이 결성되고 운동의 중심세력이 생기면서 세율인하, 불평등 조약 개정 등까지 요구했다. 자유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며 이를 주도하던 민권파가 힘을 얻었지만, '메이지 14년의 정변(1881)'으로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던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가 실각하며 독일제국의 비스마르크 헌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1889년 덴노가 만들어 국민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대일본제국헌법이 공포되고, 자유민권운동도 막을 내리게 된다. 

자유민권운동 기간 중 «마루마루친분»,  «곳케이신분» 등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인 신문에는 다양한 풍자만화를 통해 메이지 정부, 한바쓰, 심지어 황실까지 지배세력을 풍자했다. 이 시기 자유민권운동 진영의 풍자만화가들은 서구 풍자만화가들의 작품을 참조해 일본의 현실을 풍자했는데, 1880년 7월 31일자 혼다 ...
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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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한국만화, 일본만화, 웹툰, 그래픽노블 등)를 좋아합니다. 보고, 연구하고, 글을 씁니다. 2020년부터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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