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 어쩌면 님의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 1화 10월의 태풍
2024/08/04
유난히 조용했던 여름 뒤를 따라온 가을이라 그런지 시작부터 소란스럽다. 일 년이 채 안된 올해에만 벌써 열네 번의 출장이라니, 고작 서른다섯 살에 밤낮 없이 사무실에서 할로겐 조명을 받아 시들어가는 젊음에 쇄기를 박아 말라 죽이려는지 방사능 샤워까지 얹어주는 회사. 한 때는 사랑이었다. 사는 게 숨 막히게 지루하다는 걸 알아버린 어릴 적부터 그냥 앉아 있으니 닥치는 대로 허우적거리며 삶과 함께 서서히 가라앉는 편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소비라는 것 외에 달리 공통분모가 없는 온 나라의 고객이란 작자들이 이 회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눈치를 살피는 일은 지루한 인생을 박멸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여느 사랑이 그렇듯이 좋아 너무 달라붙다가 지우개처럼 내 일부가 조금씩 닳아 없어질 무렵이면 이러다 내가 아주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 사랑 역시 사라져간다.
뒤늦은 10월의 태풍 예보,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과다 출장 예보에 지금 당장 뭘 하면 좋을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루한 인생만큼이나 깊게 각인된, 재미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그것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