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없는 밤, 배고픈 아이는 울고

김양균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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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기자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동쪽 요르단계곡에 위치한 소규모 마을인 ‘파사이’. 사막 한가운데 초라한 움막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움막 한편에는 나무와 돌을 깎아 만든 목걸이 따위가 ‘진열’돼 있었고, 손바느질로 만든 히잡 등의 간단한 옷들도 걸려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초라하고 볼품없는 기념품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계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요르단계곡 인근 파사이 마을의 자밀라씨. by KIM YANGKYUN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외곽으로 갈수록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이 더 많습니다. 현지 여성으로부터 딱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돈을 벌 방법이 많지 않아요. 이스라엘 정착촌(Israeli settlement)에서 일을 하는 것 밖에는 없죠.” 

말마따나 그들은 서안지구 내 불법 조성된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거나 그게 아니면 이러한 수공예품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고픈 팔레스타인 여성들에게 그 수공예품들은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보려는 발버둥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 외진 곳까지 가서 그 초라한 물건을 돈을 내고 살지. 전 의문이 들었습니다.
베이트프릭 체크포인트의 모습. by KIM YANGKYUN
이스라엘 부르칸(Burkan) 정착촌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여성 와르다(45·가명)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됐습니다(1). 한 시간을 걸려 첫 번째 관문인 체크포인트(검문소)에 도착하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렸다가 검문을 받죠. 신분증과 노동허가증을 확인받고 허가가 유효한지, 무기나 날카로운 물건을 갖고 있는지도 검사를 받습니다. 

다시 수 킬로미터를 더 이동해 두 번째 검문소에 도착하면 또 검문이 이뤄집니다. 검문소가 붐비면 짧게는 1시간에서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날은 일터로 가지 못합니다. 와르다는 매일 아침마다 최소 3시간씩 검문소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전쟁 같은 출근을 하고 온종일 중노동으로 버는 일당은 10만원이 조금 안됐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적은 임금을 받습니다. 그나마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동 제한 조치가 발동되고 일이 줄면서 수입은 더 줄어들었죠. 석 달마다 허가증을 갱신해야 하지만 이동제한으로 인해 갱신하지 못하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와르다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더 중요하거나 쉬운 일에 배정되고, 높은 임금을 받고 있어요.” 

그는 다른 일자리 기회가 있다면 임금의 절반만 받더라도 정착촌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남편은 수입이 없고, 여섯 명의 자녀를 부양하려면 전쟁 같은 아침과 불평등한 정착촌에서의 노동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도 와르다는 험난한 출근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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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김양균 인증된 계정
의학기자
여러 의미의 건강에 대해 쓴다. 전자책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 <의사 vs 정부, 왜 싸울까?>,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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