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혼은 당신들의 결혼과 다르다 : 혼인평등에 대한 단상
2023/06/21
법제도를 중심으로 한 소수자 권리 운동이 정체성 정치나 낮은 단계의 이권 의제라고 오해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대한 가장 손쉬운 반박은 다음과 같다. 가령 동성혼 법제화의 구호가 얼핏 이성애자의 결혼과 '똑같은' 권리를 동성애자에게도 달라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동성혼에 '동성'이 붙는 순간, 그건 이미 무슨 수를 쓰든 기존의 '결혼'과 같아질 수 없다. 설령 어떤 '당사자'가 그런 기계적 평등을 강렬하게 원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법제화는커녕 성해방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제도적 이성애 결혼과 동성혼의 맥락이 같아질 일은 없다. 이것이 혼인평등 담론이 상징적 차원에서 갖는 전복적 함의다.
즉 동성혼은 그 담론 자체로 이미 기존의 결혼을 어떻게든 새롭게 정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남들 다 하는 결혼 우리도 똑같이 해보자는 식의 기계적 평등을 동성혼의 핵심으로 보는 것은 그 의제에 깔린 의미의 무게를 외려 협소하게 이해한 결과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즉 상징적 조건을 넘는 운동적 성취의 측면에서, 동성혼이 기존의 결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
『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