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단편소설] 그날 오후에는 말이야.
2024/10/12
베란다 유리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어. 남향인 그곳은 한겨울에도 낮에는 보일러를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훈훈했거든. 햇볕이 잘 드는 집에 살게 되었다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설레어하던 때가 삼 년 정도 흘러버린 해였어. 그 당시의 설렘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지금도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 사실이야. 실현 가능성 없는 희망은 너무 불투명해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잖아.
나는 몇 시간째 손가락이 저릿저릿해지도록 갈겨쓴 일기장을 멀찌감치 던져 버렸어. 그리고는 길가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룻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어. 얼굴에 닿는 햇볕이 따뜻했어. 햇볕을 등지고 몸을 웅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룩 눈물이 흘렀지.
등짝도 따뜻해지고 눈물도 말라버리자, 간사한 마음은 금세 편안하다고 기지개를 켜더라.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서 책꽂이에서 '호밀 밭의 파수꾼'을 꺼내어 들었어. 거기에 적혀 있던 문장이……. 그래, 내가 여기 수첩에 따로 적어놨어. 들어봐.
"나는 넓은 호밀 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 본단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 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책 표지의 글귀를 읽으며,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