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7
정말이지 '부당 거래'라는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후, 제 인생에서 이처럼 많이 인용하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가 가장 자주 가져다 쓰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정말 뼈 때리는 말입니다.
그게 개인 간이든, 직장이나 모임, 혹은 사회처럼 단체던 간에 우리는 수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에선 늘 관계 대 관계가 맞붙어 여러 종류의 이익 충돌이 일어나죠.
하지만 그런 관계들 중에서 이익의 충돌이 아니라 일방적인 이익의 '착취'가 일어나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 그리고 손님과 가게 사이에서 일어나는 착취죠.
이 세상에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계들에선 그러한 '당연시하다'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 더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자신을 갑이라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가게에게 요구하는 소위 '권리'로 착각하는 '방종'이 그것이죠.
'서비스'는 '공짜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가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연하님의 글에서 -
100번 공감합니다. 서비스는 그냥 서비스입니다.
당연히 취해야 할 그런 권리의 범주가 아닙니다.
공짜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도, 자신을 위한...
"사람들은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정말 뼈 때리는 말입니다.
그게 개인 간이든, 직장이나 모임, 혹은 사회처럼 단체던 간에 우리는 수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에선 늘 관계 대 관계가 맞붙어 여러 종류의 이익 충돌이 일어나죠.
하지만 그런 관계들 중에서 이익의 충돌이 아니라 일방적인 이익의 '착취'가 일어나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 그리고 손님과 가게 사이에서 일어나는 착취죠.
이 세상에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관계들에선 그러한 '당연시하다'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 더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자신을 갑이라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가게에게 요구하는 소위 '권리'로 착각하는 '방종'이 그것이죠.
'서비스'는 '공짜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가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연하님의 글에서 -
100번 공감합니다. 서비스는 그냥 서비스입니다.
당연히 취해야 할 그런 권리의 범주가 아닙니다.
공짜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도, 자신을 위한...
“Life is a journey to discovering what makes me happy and living as who I am.”
삶이란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을 발견하고 타자들이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내 자신으로 살다 떠나는 여행이 아닐런지요!
추상적이었던 제 글에 여러가지 사례들을 덧붙여주시니, 제가 읽으면서 도리어 고개를 더 끄덕거렸어요! 맞아! 내가 하고싶은 말이 이거였구나!라고 하면서요!ㅎㅎ늘 감사합니다, 풍금님!
서비스란, 편의를 위한 것이지 고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은 아니지요. 고마움의 한 방법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더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일텐데 말이죠. 누군가가 그것을 호의가 계속된 권리로 알게 된다면...그건 정말 나쁜 관계가 되는 것이겠죠.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코스트코의 양파 문제가 떠올랐어요. 분명 서비스의 일환이었는데, 몇몇 사람들의 행동에 양파 제공이 중단되면서 오히려 불만이 터져나왔죠. 그만큼 돈을 벌어가면서 왜 제공을 안 하냐는......기업이란 분명 이익 창출을 목표로 삼으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몇몇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냉장고를 채워주는 것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행동이 아님에도 오히려.........전 그것을 보면서도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아는 사례로만 보였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육남매 라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큰 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더군요.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아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육남매 라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큰 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더군요.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아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