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의 비극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1/30

크리스마스를 전세계의 축일이나 축제, 혹은 휴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도 은연중에 그런 느낌을 받곤 하지만, 실제로는 옆나라 일본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다. 하기야 기독교가 국교도 아니니 그 종교 축일에 쉬어야 할 마땅한 이유는 없다고 해도 반박할 거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즐거운 휴일의 이미지를 뒤집어쓴 것은 기독교와 서양 문화의 유입에 더해 ‘통금’이 있던 시절에 크리스마스 이브만 통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 듯한데,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원래 한국 문화가 아닌지라 부모님께 꼭 효도 선물을 해야 한다든가 손위 지인들에게 안부 인사를 돌린다든가 하는 의무가 없다는 사실도 마냥 즐기는 날로서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다만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산타도 å믿은 적이 없을 뿐더러 크리스마스를 진심으로 즐겁게 생각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놀아야 마땅한 날이라고 친구들과 모여서 논 기억이야 즐겁게 남아 있지만,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학수고대하며 부푼 가슴을 안고 지낸 적은 없었다. 오히려 크리스마스엔 어디에 가야 하나…… 하고 고민한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비뚤어진 성격이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암담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에 친구들과 놀러가서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그때 조그만 트리 하나 놔두는 것도 예쁘고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편의점에서 할인 행사로 그럴듯한 트리를 5천 원에 판다는 광고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 광고를 본 날, 나는 곧장 산책길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내가 본 광고가 거짓도 헛것도 아님을 증명하듯 편의점 문앞에도 트리를 카드 할인으로 싸게 판다는 내용이 붙어 있었다. 나는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행사 상품이니까 아주 잘 보이는 곳에 트리가 즐비하게 놓여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웬 걸, 트리가 진열되어 있기는커녕 직원에게 물어도 뭔 소리냐는 눈으로 되물을 뿐이었다. 앱에 광고가 뜨기에 사러 왔다고 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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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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