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3
1)시민 항쟁 2) 독재 체제의 연장 3) 권력 핵심의 전면적 교체. 한국사에서 1979-1980년은 이 세 가지 모두가 겹쳐져 일어난 시기다. 신해철은 1996년 박정희 사망 발표로 시작해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사로 끝나는 <70년대에 바침>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수 차례 다뤄졌다. 다만 10.26과 5.18을 담은 작품이 여럿인 반면 12.12를 다룬 영화는 <서울의 봄>이 처음이다.
그렇다고 12.12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95년 드라마 <코리아게이트>(SBS), <제4공화국>(MBC)를 통해 이미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월간조선은 그해 9월호에서 사태 당시 관계자들 사이의 통화내용을 입수해 도보하면서 독자들에게 녹음 테이프를 나눠주기도 했다. 마침 그해 전두환, 노태우 씨가 반란수괴죄 혐의로 구속되어 그 드라마들은 국민 드라마가 되었다. 특히 반란을 진압하려 했던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야 이 반란군 놈의 새X야!“는 대유행을 일으켰는데, 이는 2005년 <제5공화국>을 통해 또다시 반복되었다.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지나 등장한 <서울의 봄>은 장년층 이상 관객의 다수가 결말을 뻔히 알고 있다는 난점을 극복해야 했다. 막바지 경복궁 앞 대치를 제외하고는 허구적 설정을 자제한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승부했다. 첫째는 긴박하고 촘촘한 전개, 둘째는 웅장하면서도 사실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셋째는 배우의 에너지에 맞게 재창조된 캐릭터다. 그 결과 이 영화는 12.12나 그 주체 세력을 다룬 드라마를 경험해 본 관객들, 정치와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깊은 시민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작중 캐릭터는 두고두고 주목받을 것이다. 이태신 사령관은 장태완 전 사령관의 투박함을 발라내고 정우성식으로 재구성되었고, 상대적으로 작게 주목받아 왔던 김진기 당시 헌병감은 김성균을 통해 대중적으로 깊이 인식될 것이다. 실존 인물인 최규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형성된 대중 이미지와 달리, 최한규 대통령(정동환)은 강단이 있고 노태건 소장(박해준)은 터프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진호(고 김오랑 중령)가 정해인을 통해 <슬기로운 깜빵생활>, <디피> 나오는 군인과 접속되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 “전두환 영화가 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데에는 여러 배우들의 공로가 크다.
항간에서는 이 영화가 전두환을 미화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김성수 감독이 “전두환을 악마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 창작자의 의도를 떠나 오해의 소지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