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와식생활자에게도 루틴은 있어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3/28
누워만 있다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인간은 그렇게 납작하고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라도 그렇다. 꼬박꼬박 일정 시간 이상을 누워 있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필수다. 해서 나에게도 루틴이라는 것이 있다. 

하루의 루틴이라고 하면 흔히 기상부터 꼽겠지만 내겐 잠이 드는 것부터 루틴의 시작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는데 불면증 치료를 위해서는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좋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는 반 강제적으로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효과는 별로 없었고 기계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에 더 우울하고 피곤하기만 했다. 

지금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다만 잠이 드는 시간대를 11시와 1시 사이로 잡아두었다. 나는 내가 좋아야, 내가 좋으려고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앞에서도 말했는데 이는 곧 의무로 무언가 하는 걸 안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도 의무가 되면 별로다. 흥미가 떨어지고 찌꺼기가 생긴다. 그런 나를 알기에 루틴도 느슨하게 정해둔다. 느슨한 루틴을 느슨하게 지키기. 이게 내 루틴의 대원칙이다. 잠들기의 경우에는 가급적 새벽 1시 전까지는 잠들기, 친구들과 놀거나 너무 좋은 책을 읽어 흥분했거나 어느 것도 아니지만 그냥 왠지 안 자고 싶은 날에는 안 지켜도 됨, 다만 이런 날들을 너무 많이, 연속적으로 만들지는 말자, 정도가 된다. 

그렇게 잠이 들어 눈이 떠질 때 일어난다. 6시간이든, 8시간이든 상관없다. 자고픈 만큼 잔다. 내가 깰 때가 일어날 때다. 알람 따위 당연히 없다. 이렇게 자고 나면 누군가는 온몸이 상쾌하고 배터리를 갈아 끼운 양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는데 나에게는 그야말로 전래동화 속 호랑이 같은 이야기다. 에너지가 뻗쳐 주체를 못 한다는 유년기에도, 쇠도 씹어 삼킨다는 10대에도 그런 날은 없었다. 둥근 해가 떴으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은 꼭꼭 씹어 먹은 다음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일 따위는 평생 없었다는 얘기다. 자고나도 졸립고 힘이 없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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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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