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너머의 세계와 그 무게 ─ 뉴스를 읽다가

전업교양인
전업교양인 · 생계를 전폐하고 전업으로 교양에 힘씀
2024/04/24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정 치하의 일본에서 어떻게 ‘정치’라는 것이 현실에서 일상과 연결되는지 깨닫게 된 일본인의 상황을,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날, 어떤 가정의 주부도 바다 건너편의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이 그녀의 가정에 있어 내일 저녁의 식사와 문자 그대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안다[모르지 않는다].”(1946년) 

저녁 식탁의 문제라고 한다면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신경 써야 할 ‘이어진 것들’은 문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태다. 왜냐면 전 지구적인 규모에서, 무수한 층위에서,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 오너의 자녀가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주가가 폭락한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 감사의 문제와 얽혀 기업이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누군가 무차별 범죄를 일으키려 유통 물류센터로 들어가 음식물에 독극물 테러를 함으로써 전국적인 패닉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위기라고 판단한 다국적 기업들이 발빠르게 철수하면서 국가 부도사태가 벌어지고 지불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거대한 유조선 하나가 갑작스런 태양풍의 이상 현상으로 인해 잠시 자동항해장치에 문제가 생기고 불운하게도 암초와 충돌해 일대의 바다를 끔찍하게 오염시키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저녁 식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의 뉴스가 우리의 관심사가 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일들이 별로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너무 일상적이어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는 보관하고 있던 기록물을 뒤적이다가 자신의 영화를 놓고 이루어진 어느 대학의 회의록을 읽게 된다. 그리고 한 젊은 수학자의 발언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20세기가 일종의 정서적 인플레이션의 발흥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문에서 2백만 명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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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건 무엇인지 고민하다 자기 한 몸 추스리는 법을 잊어버린 가상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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