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의 영성 : 《사일런스》(2016)
2023/12/20
내 게이스북과 이반시티의 아이디는 이스카리옷 유다에서 따왔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져 루시퍼의 입에 물린 자이자, 성경에서 영원한 배신자로 그려진 그에게 나는 어릴 때부터 왠지 정이 갔다. 남자 좆을 빨면서 이게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닐까 싶은 배덕감은 그 정동과 그럴싸하게 연결되었다. 이런 얘기를 공공연히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국교가 있는 나라가 아니고, 지금이 종교재판이 열리던 중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 그 어느 때 이런 말과 실천을 했다간 나도 뼈와 살이 남김없이 불탔을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1966)을 영화화한, 중세 일본의 천주교 탄압을 다룬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2016)는 배교자의 영성을 다룬다. 극중에서 몇번이고 성상을 밟고 배교하는 키치지로는 대사가 떠먹여주듯 명백히 유다에게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소설의 결말과 달리 영화는 키치지로와 배교한 사제 로드리게스가 모두 죽을 때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주기적으로 배교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 죽이길 서슴지 않는 막부의 검열 가운데, 어쩌면 그 편이 죽음이 아닌 삶을 영위할 유일한 방편이었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가톨릭 교구와 교황청이 할 수 ...
『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