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까

기며니
기며니 · 내 글이 돈으로 바뀌어야 먹고 살지.
2023/10/13
기립박수를 받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들어서는 나에게 백인 십여 명이 박수를 쳤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 나올 것 같은 깊은 숲 앞 오래된 마을회관에 팀원들이 모여있었다. 마을회관은 동화 속 중세 유럽 마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왔는데, 마지막 버스는 하루에 세 대만 다니는 버스라 놓치지 않으려 시계와 길을 번갈아보면서 온몸에 긴장을 하고 기다렸다.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업 계획서를 중얼거리며 외우고 너무 오래 앉아 엉덩이가 아플 때쯤엔 일어나 발표 연습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축구경기에서 골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신나게 손가락 호루라기까지 불면서 일어나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통에 전부 까먹어버렸다.

회의실엔 의자가 없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쭈뼛쭈뼛 자리를 찾으려는데 자리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 먼 길 오느라 힘들었겠다.", "환영한다.", "삼성의 나라 사람이냐" 등 실없는 환영 인사를 하면서 팀원들은 바닥에 한쪽 팔을 세워서 머리를 받치고 반쯤 눕거나, 책상에 걸터앉거나 창틀에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쭈그려 앉는 등 한 명도 같은 자세로 멈추지 않았다. 처음 보는 회의실 풍경에 열심히 눈알을 이쪽저쪽 굴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커다란 배낭을 벽에 놓고 등받이 삼아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오늘은 공식 일정 시작일이고 회의 주제는 2달 동안 지역 와인축제의 기획, 홍보, 실행, 마무리까지 담긴 기획안을 함께 완성하는 것.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 행사를 기록하는 동시에 보완하고 현대화해서 지역의 젊은이들이 유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프로젝트 스태프로 지원해서 선발됐다.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기획안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축제 준비 기간 두 달 동안 시간별로 세분화해 할 일과 마감기한을 표로 만들고, 인력 운영계획과 예산안까지 첨부했다. 천 년 가까이 이어져온 마을의 작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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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모든 제안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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