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시학 (1)-지구는 시로 가득 차 있다

우석영(동류실주인)
우석영(동류실주인) 인증된 계정 · 철학자. 비평가. 작가.
2023/09/07

[알리는 글-연재를 시작하며] 포스트휴먼 철학+문학, 그러나 지구에 대한 염려가 전무한 포스트휴먼 철학+문학이 아니라 지구에 대한 염려로 가득한, 지구친화적 포스트휴먼 철학+문학을 <지구의 시학>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합니다. 존재론적 전환, 사상적 전환을 위한 문학(주로는 시, 고전문학, 원시문학) 재검토라는 작업이되, 그것을 재검토하는 시선은 어디까지나 철학의 시선입니다. 그럼 즐독을 바랍니다. (우석영)


1. 
지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될까? 이것은 하나의 실효성 있는 문장인가? 예전에 어떤 이가 ‘시적인 것’과 ‘시’를 구별했듯, 우리는 시poetry시작품poems/poetic works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시’란 시작품으로 아직 구현되지는 않은, 그러나 얼마든지 글이라는 꼴로 구현될 수 있는, 시를 쓰려는 자가 접촉하고 경험하고 있는 원형질의 물질/물질 과정을 지시한다. 시작품으로 구현되어 우리의 시야에 나타날 수도 있는 잠재태. 나는 이것을 ‘시’라고 불러보겠다. 

철학자 릭 돌피언[돌페인]Rick Dolphijn이 말한 것처럼, 모든 음악의 밑바탕에는 “들리거나/들리지 않는 숱한 소리”가, “중요한/문제되는 소리들”과 “소리나는 물질들”이 일종의 밑절미로서 은연히, 뭉근히 깔려 있다. 지상에서 살면서 우리가 그간 들은 것들, 즉 무수한 소리들/소리나는 물질들이라는 그 단단한 토대 위에서만 비로소 한 인간의 작곡이라는 행위가 가능하다.

재즈 음악인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작곡 방식은 돌피언의 논지를 우아하게 뒷받침하는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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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철학. 탈성장 생태전환. 포스트휴먼 문학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행동사전>(공저)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 해결된다>(공저) <숲의 즐거움> <동물 미술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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