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모르는 이들을 향하는 정치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2/05/27

 군대에서 2016년 총선을 맞았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래로 선거를 그렇게 조용히 겪어본 적이 없다.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는 성향이 군에서 들킬까 아무래도 더욱 움츠리게 되었다. 선거 자체보다는 그래도 투표하기 위해 외출했다는 것이 나름 하루의 이벤트여서 저녁 점호를 기다리는 중에 투표 얘기가 나왔다. 

"집에서 야당 찍으라고 했는데, 어디가 야당이고 여당인지 몰라서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한 후임의 얘기가 귓가에 거슬렸다.

 "혹시 누구 찍었는지 기억나?"
 "음, 하 뭐시기인가 그랬는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친구의 집은 부산 해운대니까, 그곳에서 하 씨 성을 가진 후보라고 한다면… 잠시만, 야당을 찍으라 그랬는데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찍었다고? 새누리당이 여당이구나, 멋쩍어하는 후임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웃음의 끝맛이 떫었다. 여당, 야당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내 무의식 속의 안일함이 부끄러웠던 까닭이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 정당의 지지자를 자임하면서도 정작 주변 세계에는 무관심한 나의 자폐적 세계관을 들킨 것 같아 남몰래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경험 이후, "서민과 약자를 진정으로 대변하는 것은 바로 우리"라고 하는 진보 정당의 언어 앞에서 나는 자주 멈칫거렸다. 그것이 만약 대중과 괴리된 우리들만의 자폐적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진정 약자를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피초르노는 말한다.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은 그 민중의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민중에 대해 정확히 알고는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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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은 여당과 야당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무지하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시대를 선도하는 물결을 만들어낸다. 촛불을 들어 거대 권력을 일거에 무너뜨리지만 공공연히 독재 시기를 그리워하는 반동적 질서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민중은 이 모든 것이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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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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