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않고 내려오기를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07
아버지가 평행봉을 보면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학생 때 평행봉 운동을 어디서 배운 적도 없이 혼자서 아주 잘 했는데, 하루는 아차 하는 사이에 실수해서 그대로 떨어졌고, 지면에 충돌한 뒤 몇 시간만에 그 자리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뇌진탕으로 기절한 상태에서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일어났다는 말인데, 이후로 무슨 치료를 받았다거나 평행봉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다거나 하는 뒷얘기는 없었다. 아무튼 위험천만한 사고에서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그것은 우리 가문에서 이어질 추락 사고의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사고를 당한 것은 형이었다. 형은 겨우 걸을 만큼 어릴 때 2층에서 추락했다. 어머니가 아주 잠깐 못 본 사이에 2층 옥상인가에서 떨어졌다는데,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떨어지던 중간에 2층 창가 난간에 걸린 물건에 부딪혀서 큰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코가 약간 비뚤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골격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의 부상으로 얼굴 조형이 바뀔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뒤는 물론 내 차례다. 추락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지금까지 계단에서 세 번쯤 구른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친척들과 놀다가 친척 형이 빨리 가라고 밀어서 철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게 첫 번째였다. 그때 뺨에 상처가 난 사진이 앨범에 아직도 남아 있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운동 신경이 발달하지 않은 탓인지, 나는 항상 계단을 내려가는 게 능숙하지 못한 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의 돌계단에서 겁도 없이 두 칸씩 마구 뛰어내려 쫓고 쫓기기를 즐겼는데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 한 칸씩 빨리 움직이거나 미끄럼 방지가 되지 않은 부분에서 드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정도만 가능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계단이 또다시 나를 불렀다. 형이 다니는 미술학원에 같이 갔다가 나서는 길에 계단의 미끄럼 방지 부분에 걸려서 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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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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