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얼굴

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3/05/20
얼굴은 개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었다. 뙤약볕에서 일을 한 사람은 해에 그을리고 닳은 얼굴로 삶의 흔적을 드러낸다. 서늘한 그늘에서 살았던 사람은 매끄럽고 사용흔이 희미한 얼굴이기 십상이다. 많이 웃는 사람은 온 얼굴이 웃음을 위한 주름으로 뒤덮인다. 화를 자주 낸 사람은 화를 낼 때 자주 쓰는 얼굴 부위에 화가 새겨진다. 무뚝뚝한 입꼬리,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눈매로 성품을 유추하고 다가갈지 말지를 결정했다. 다정한 행동을 만나기 전에 상대방을 바라보는 다정한 표정으로 사람을 판단했었다. 표정이 밝은 사람, 눈매가 선한 사람, 잘 웃는 사람, 피부가 청결한 사람은 삶도 그러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호감을 나타내고 가까이 다가갔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손바닥의 손금은 바꾸는 것이 어려운데 얼굴에 나타나는 삶과 감정의 흔적은 지우고 수정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단다. 범죄자의 인상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것처럼 험악하다고 믿었는데 아니다. 성범죄자의 외모를 두고 ‘저런 얼굴이니 뒤에서 성범죄나 저지르지’와 ‘저 정도 생겼는데 왜 그랬지?’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믿음직스럽고 선량한 얼굴의 경찰이 미성년자를 강간했다. 인품이 있어 보이는 교장이 학교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보고 들은 것보다 더 끔찍하고 우울한 사건들이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속셈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얼굴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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