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통신 3-놀랍도록 변하지 않은 영국

박산호
박산호 인증된 계정 ·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2023/08/14

   
꿈도 없이 혼곤한 잠에 빠져 있다가 문득 어떤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은근한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사람의 것은 아니었고, 고양이나 개의 소리도 아니었다.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불 속에 누워 잠시 그 소리의 정체를 고민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기나긴 비행 끝에 도착한 영국의 낯익은 방(천사 같은 L 언니의 배려로 10년 전 살았던 방에서 다시 머물게 됐다)에서 나는 평소의 불면증이 무색하게 타르처럼 검고 끈적끈적한 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크로아상과 로켓(아르굴라)라는 이름도 생소한 허브와 갖가지 채소로 L 언니가 아름답게 차려준 아침을 황송한 마음으로 먹으며 언니에게 물었다. 간밤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뭐였냐고? 알고 보니 그건 여우 소리였다. 여우가 짝짓기하느라 서로에게 구애할 때 내는 소리라고. 아...

본인 사진



문득 어렸을 때 시골 집에서 키웠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 미모가 어찌나 찬란하던지 밤마다 온갖 수고양이들이 몰려들어 서로 목청을 뽐내는 바람에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밤 마당에 나가보니 우리 고양이(이름이 희경이였다)를 중심으로 목덜미가 마치 검은 코트를 입은 것처럼 검고 두툼했던 대왕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고, 그 옆에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서서 눈빛을 빛내고 있던 광경이 보였다. 




어린 눈에도 어쩐지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광경이라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며칠 후 운 좋게 나는 L의 집 앞마당에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가는 여우 한 마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네가 그때 내 잠을 깨운 그 여우였니?” 






아침을 먹고 L이 어디를 가보고 싶으냐고 해서 리치몬드 공원과 릴리(내 딸)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를 ...
박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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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좀 특별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일, 철학,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 시리즈.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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