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엔 잦은 환기가 필요하다

빛기 · shiny trash Can
2021/10/04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첫째인 네가 잘 되어야 한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남들이 보기엔 전혀 잘 되지 못한 집의 맏이였기 때문에 그 말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도대체 잘 되는 삶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백일장에 나가 아주 가끔씩 운 좋게 수상을 하곤 했었는데 아빠는 그때마다 나를 친구들 모임에 데려가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수상의 기쁨도 잠시, 그때마다 내 기분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아빠의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체면을 세우고 싶어하는 아빠의 마음이 훤히 보여서 어딘가 씁쓸해졌다. 내가 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을 일찍 느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빠의 뜻대로 하지 않아 아빠를 실망시키는 날들이 많아지고 공모전 수상 등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게 되자 아빠는 더 이상 나를 친구들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다. 내 근황을 묻는 친척들에게 그냥 잘 지내고 있다며 내 이야기를 얼버무렸고, 그때마다 나는 내 존재가 작아지고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주 팔자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철학관에서 이름을 바꿨는데 바꾼 새 이름의 뜻 또한 '빛나는 기둥'이었다. 집 안을 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그 이름의 뜻이 나는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잘 되고 싶어서 참 열심히 사셨던 부모님이었지만 좀체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사건, 사고가 많아서 마냥 화목하게 살 수가 없었다. 이제 좀 버젓이 살만 하다 싶으면 하늘은 보란 듯이 부모님의 삶을 걸고 넘어졌고, 덩달아 나도 함께 넘어지며 일찍 절망을 알았다. 이곳저곳 부서지고 허물어지고 내려앉은  집을 잘 빚어낸 기둥 하나로 받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내리 눌렀고, 나는 그것조차 떠받치기 버거운 나이였다. 자식의 성공을 본인의 성공이라 여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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