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평]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
2022/09/07
By 김두얼
새로운 고전의 탄생
경제학에서 어떤 분야의 성쇠는 스타 경제학자에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1992년 발간한 『지리와 교역(Geography and Trade)』은 (신)지리경제학이라는 분야의 탄생을 가져왔다. 물론 크루그먼 이전에도 지리나 교통, 도시화 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크루그먼이 경제활동의 지리적 분포를 이해하는 사고의 틀을 제시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경제학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완전히 달라졌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 위원회가 국제경제학 분야에서 크루그먼이 이룩한 수많은 성과와 함께 경제활동의 지리적 양태에 대한 분석을 수상 이유로 명시한 이유이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도 비슷하다. 2000년대에 불평등 연구가 경제학에서 중요한 분야로 부상하는 데 그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3년 간행되고 이듬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21세기 자본』은 그 시점까지 이루어진 자신의 연구를 종합하고 재구성해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올해 아니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표지 추천사는 과장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불평등과 관련한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 담당자 나아가 일반 대중이 이 책을 읽고 토론하였으며, 수많은 새로운 연구가 이어졌다.
『21세기 자본』이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피케티가 주요 국가들의 다양한 사료를 발굴해서 불평등의 장기 추세를 포괄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것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에서는 특정 주제와 관련해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그리고 신뢰할 만한 양태 혹은 현상을 정형화된 사실(stylized fact)이라 부른다. 어떤 문제에 대한 논리적 추론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순수한 이론적 접근만으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어려운데, 정형화된 사실은 이론적 논의나 실증적 분석의 토대를 제공하고 연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관련 연구를 활성화한다. 『21세기 자본』은 정형화된 사실의 제공을 통해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나아가 자신의 실증 작업을 토대로 불평등에 대해 기존 연구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직관을 내놓았다. 저자가 향후 연구의 토대가 될 만한 사실들을 제공하며 흥미로운 주장까지 펼치는 책이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과연 피케티는 어떻게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불평등에 대한 역사 자료 분석을 기초로 어떤 주장을 했을까? 그의 주장은 자신이 제시한 논리적·실증적 증거와 잘 부합할까? 이 질문들을 따져 보며 『21세기 자본』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을 대하는 제대로 된 자세일 것이다.
토마 피케티: 경제학계의 이단아?
피케티는 197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22살에 유럽박사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의 런던정경대학(LSE)과 프랑스의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이 공동 수여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은 소득 분배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었다. 이 논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졸업하자마자 MIT의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사실이 말해 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은 1995년 프랑스로 돌아와서 프랑스국가과학연구센터(CNRS)에 있다가, 2000년부터 EHESS와 파리경제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 토마 피케티의 홈페이지 참고. http://piketty.pse.ens.fr/en/c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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